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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Dec 21. 2023

어느새 마지막 화살일 때

잘 쏴보겠다고 해본 건데

반구저기(反求諸己).

일시천금(一矢千金).


활을 낼 때 내가 유념하는 두 가지의 정신이다.

하나는 언제나 시선을 바깥이 아닌 내부에 둘 것.

또 다른 하나는 한 발 한 발 매우 소중하게 여기며 매 시(矢)에 충실한 태도로 임할 것.


반구저기는 <맹자>의 <공손추>에 나오는 말로 화살이 과녁에 맞지 않았을 때 원인을 다른 사람이나 외부의 다른 요인에서 찾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서 찾으라는 뜻이다. 일시천금은 화살 한 발을 천금보다도 귀하게 여기라는 말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집중력을 잃지 말라는 뜻이다.


듣기에도 좋고 말하기에도 좋은 말이 아닐 수 없지만, 실천에 옮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화살이 과녁에 맞지 않으면 일단 덜컥 짜증이 나거나, 부끄럽거나, 조바심이 나거나, 낙담하는 등 즉각적인 감정부터 올라온다. 사람이 감정에 휩싸이면 해야 할 것을, 하기로 되어있던 것을 온전히 하지 못한다.


애써 평정심을 되찾았다고 한들 '내 탓'을 하기는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화살을 밀어냈다고 하게 되고, 주변 사람들이 시끄러우면 그것 때문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고 하게 된다. 나에게서 관찰되는 부족함은 단지 '찰나의 실수'이지 잘못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게 남 탓과 합리화를 넘나들다 보면 문자 그대로 쏜살 같이 어느새 마지막 화살이다.


사람이란 게 참 쉽게 바뀌질 않는구나.

반구저기와 일시천금의 정신은 다음 기회에.


화살처럼 매 순간도 소중히


평소 억울함에 잘 눌리는 편이다.

나의 선의를 상대는 악의로 받아들일 때, 나의 노력이 단지 결과로만 평가받을 때, 내가 옳다고 믿으며 지키려고 하는 가치를 누군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거슬러 버릴 때. 부당함을 마주할 때, 내로남불을 볼 때.

그럴 때는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고 만다.


언성을 높이지 않고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도 그런 상황에 침착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사람이고 싶다. 감정에 휩싸이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감정을 파티시에가 빵 반죽을 다루듯 자유자재로 주무르고 싶은 사람이고 싶다. 그게 참 쉽지가 않다.


가슴이 답답할 땐 활터로 나가서 활을 내곤 한다. 가까이서 보면 2미터가 훌쩍 넘는 커다란 과녁이 145미터 떨어진 사대에선 손톱만 하게 보인다. 무엇이든 멀리서 보면 작고 사소해진다. 나를 답답하게 하던 문제도 집에서 나와 활터까지 오는 사이에 작고 사소해졌다. 과녁이 그렇듯이.


그런데도 가끔은 우습기도 하다. 그렇게 사소해진 과녁이라도 궁사에겐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그 앞에만 서면 반구저기니 일시천금이니 온갖 미사여구로 스스로를 다잡게 된다. 여전히 사소하지 못한 마음.


거리가 300미터로 늘어나면, 과녁이 아예 보이지 않게 되면, 그땐 좀 내려놓을 수 있게 될까?


반구저기든 일시천금이든 그것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야 할 테다. 그러나 내가 하는 반구저기와 일시천금에는 '이렇게 하면 잘 맞겠지?'라는 욕구가 숨어있다.


거리가 멀어져도 내겐 과녁이 커다랗게만 보이나 보다. 멀어져도 작아지지 않고 도리어 커졌나 보다.

나 스스로가 잘 변하지 않아 답답한 마음 이면에는 스스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지 못하는 마음이 깔려있었나 보다.



언성을 높이는 건 잘못됐다.

감정에 사로 잡히는 건 성숙하지 못하다.

어른답게 굴어라.


내가 내 안의 나에게 늘 꾸짖으며 하는 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신경 쓰이다 보니 나온 '셀프 훈계'의 말들.


과녁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거리가 아무리 멀어진들 내 마음속에선 결코 작아지지 않는다. 나라는 사람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지 못하면 제 아무리 그럴듯한 말과 행동으로 포장한들 결코 끝없는 자기 훈계의 챗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한 발 두 발, 화살이라는 기회가 줄고 마지막 한 발이 남았을 때 비로소 정신이 든다. 하지만 그 깨달음은 찰나와도 같아서 이내 새로운 한 순(巡, 다섯 발)으로 새 출발을 하면 증발되어 사라진다.


윤회와도 같은 다짐과 망각의 반복.

나의 활쏘기의 현주소이자, 나의 성장 여정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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