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깊은 겨울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이 봄을 기다리는 방법이다.
당신이여, 겨울이 깊습니다.
당신의 삶은 겨울엔 봄을 기다리고, 봄엔 여름을 기다리고, 여름에는 가을을 기다리고, 가을이면 겨울을 기다리는 삶이 아니신지요. 이렇게 물으면 당신은 이렇게 대답하지요.
왜냐하면, 겨울은 너무 춥거든요.
더군다나 없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너무 가혹해요.
그러나 사실 그것은 핑계에 불과하고, 한 발은 미래를, 다른 한 발은 과거를 딛고 살아가느라 '지금 여기'라는 '현재'의 시간을 덧없이 흘려버리며 살아오는데 익숙하기 때문이 아니신가요? 그렇게 또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니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것이 당혹스럽지 않으신가요?
그래요. 많이 당혹스럽네요.
어쩌다 그렇게 되었어요. 제가 살아오던 세상은 늘 그랬어요.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라.
그것이 미덕인 줄 알았습니다.
이미 살아온 과거는 당연히 잊힐 수 없는 것이니 한 발을 딛고 살았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오늘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해본 바가 없었어요.
그리고 사실, 겨울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너무 가혹한 계절이잖아요.
그래요.
당신은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그래서 여기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당신은 지금 여기에 서 있지 못합니다.
주어진 오늘 'Carpe Diem!', 그것을 못하는 것이지요. 그냥 오늘을 즐기세요. 즐기라고 하니 거부감이 있다면, 그냥 오늘을 제대로 살아가세요 정도로 생각하세요.
겨울에 대한 좋은 추억이 없으신가요?
있다마다요.
유년의 시절 꽁꽁 얼어붙은 논에서 썰매를 타기도 하고, 동산에서 눈썰매를 타기도 했지요.
소년 때에는 겨울도 그렇게 추운 줄 모르고 지냈어요.
청년의 때에는 사랑하느라 그랬는지 별로 추운 것을 몰랐지요.
중년에는 겨울이 주는 상징 때문에 일단 머리로 겨울을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젠 싫어요. 겨울이 오기 전부터 겨울이 싫었어요.
아무튼, 겨울이 좋았던 적은 있었네요.
예,
어느 계절이든 어떤 일이든 좋은 때도 있고 나쁜 때도 있는 것이겠죠.
"모든 때가 다 아름답다!" 이런 말 좋아하지 않으세요?
예, 좋아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모든 때'를 다 좋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한쪽만 좋아했어요.
예를 들면,
슬퍼할 때와 기쁠 때, 넘어질 때와 일어설 때, 죽음의 때와 생명의 때 중에서 나름 좋은 쪽만 선호했으니 결국 좋아했지만, 반쪽 사랑이었네요. 역경 없는 삶이 참 기쁨을 알 수 없을 터인데 말이죠.
그런 줄 알면서도 여전히 겨울 같은 삶을 원하지는 않아요.
일부러 겨울을 내 삶으로 모셔올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물론, 온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에요.
지금처럼, 봄을 기다리지만 겨울을 어쩔 수 없으니 그냥 맞이하는 것처럼요.
한 가지는 분명해졌네요.
겨울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고, 봄을 기다리는 사람도 지금 여기에 있는 겨울을 어쩔 수 없으니...
지금 여기에 있는 겨울을 즐겨라!
깊은 겨울이라 봄이 그리운 것이겠죠.
그리움 하나 품을 수 없는 마음이 어찌 겨울을 품을 수 있겠어요. 이제 알겠어요.
당신이 겨울을 싫어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고마워요. 이해해 줘서.
겨울은 겨울대로 의미가 있지요.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제 말은 봄을 기다린다고 겨울을 외면하거나 증오하는 것은 아니에요.
조금 싫어할 뿐, 겨울이 있어야 봄이 빛나니 어지 소중하지 않겠어요.
당신, 겨울이 싫지는 않군요.
겨울이니까 봄이 여기 없으니까 봄이 그리운 것이군요. 그런가요?
글쎄요.
그보다는 이미 꽃망울을 맺고 있는 목련이나 개나리 진달래 같은 것들이 피어나는 날을 기다리는 것이겠지요. 그것이 겨울을 즐기면서 사는 방법이 아닐까요?
겨울이 끝이 아니다. 그 너머에 봄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이에 있으므로 그냥 지금 여기를 묵묵히 살아갈 뿐입니다.
그것을 즐긴다고 이야기해도 좋고 견딘다고 이야기해도 좋아요.
어떻게 말하든 아무 상관하지 않겠어요.
기어이 내가 기다리는 봄은 올 터이고, 그때 겨울은 저만치 우리로부터 작별을 고하고 떠날 것이므로.
#본 글에 있는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