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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Feb 19. 2016

"모든 날이 다 좋다!"

#45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

물망초 - 햇살이 좋은 날


사진은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말이 있다.

빛이 없으면 사진도 존재할 수 없고, 빛에 따라 사진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그리하여 사진가들은 '매직 아워'에 정말 마법 같은 신비로운 빛을 만나길 기다리고, 아예 사진을 아름답게 그려주는 아침의 빛에 반해서 오전에만 사진 작업을 하는 사진가도 있다.

그만큼 빛은 사진에 있어서 중요하다.




사실, 사진을 담기엔 어떤 날이라도 좋다.

흐리면 흐린 대로, 어두우면 어두운 대로, 밝으면 밝은 대로 그 순간, 거기에서만 담을 수 있는 빛이 있으므로 사실 모든 날이 사진 하기에는 다 좋다.


그럼 점에서 사진은 인생을 닮았다.
그래서
사진은 철학이다.
모든 날이 사진 하기 좋은 날이듯,
모든 날은 살아가기에 좋은 날인 것이다.

와온갯벌 - 비오는 날


매화꽃 필 무렵, 벼르고 벼르다 겨우 기회를 만들어 순천만 와온 갯벌을 찾았다.

그러나 봄비가 내리면서 갯벌에 해무가 가득하여 와온 갯벌은 희미하기만 했다. 게다가 내리는 비 때문에 사진을 담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그런 날이라면 여간해서는 사진을 좋아하는 이들도 카메라를 선뜻 들고 나서기 쉽지 않은 날일 터였다.




그러나, 그래서 어쩌면 나만의 사진을 담을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봄비를 맞으며 해무에 가려 희뿌연 와온을 걷는 것이 축복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그날, 그렇게 기분 좋게 걷기를 참 잘했다 생각이 든다. 게다가, 그날도 그렇게 아름다웠는데 다른 날은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싶은 와온 갯벌에 대한 환상도 생겼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너무 힘들면,
그런 삶은 아무나 살아가는 것이 아니며,
신은 그 시련을 이겨낼 사람은 나밖에 없어서 내게 그 시련을 준 것이라고.


두물머리-일출과 물안개


사진은 눈으로 찍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찍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니체는 "철학은 망치로 한다"고 했다.

철학을 하려면 우리 안에 있는 완고한 인식의 틀을 깨뜨려 버려야 한다는 점에서 울림을 주는 말이다.

다시 한번, 사진은 가슴으로 찍는다.


삶도 그렇지 않은가?
머리만 뜨거운 사람보다
가슴이 뜨거운 사람이 공감의 폭도 넓다.
공감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가슴은 차갑고 머리만 뜨거운 사람들이다.


강화도 -노을빛


나는 개인적으로 다큐 사진을 좋아한다.

그런데 현실을 직시하는 다큐 사진을 하다 보면 현실의 고통이 전이되어 사진가도 아프다. 어쩌면, 개인적으로 다큐 사진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감동적인 다큐 사진을 보면 그 사진을 담은 사진가에게 빚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간혹,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모든 날이 다 좋아"라고 말하는 것이 사치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내가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날을 그가 대신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 같아서 그렇다. 그래서 말이 어렵다.


"모든 날이 다 좋다"
그래야만 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종달리 두문포구-해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시간에


사진은 가슴으로 찍지만 동시에 발로 찍는다.

발품을 팔아야만 '생생한 찰나의 순간'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직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순간도 있고, 그 어떤 사진이라도 담기는 그 순간 '단 한 장의 사진'이 된다.




물론 발품을 덜 팔고 사진을 담을 수도 있다.

연출사진(그러나 연출사진은 카메라의 기술적인 기능들을 온전히 익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의 경우, 자연의 빛만 의존해서 사진을 담는 것보다는 더 안정된 상황에서 편안하게(?) 사진 작업을 할 수 있다. 무엇이 더 좋다 나쁘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나는 연출사진보다는 발품을 판 사진이 더 좋다.


어쩌면 삶도 그렇지 않을까?
그 어느 삶이 더 우위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발품을 판 사진을 좋아하듯,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을 좋아한다.

한강 - 석양/미러렌즈사용


모든 날은 다 좋다.
사진을 하기에도 삶을 살아가기에도 모든 날은 다 좋다.
어쩌겠는가?
힘들다고 한숨만 쉰다고 그 날이 더 좋아지지 않는다면,
"모든 날이 다 좋다!"가 답이 아니겠는가?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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