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병이'에 대해 아십니까.
풍파를 견디는 민초.
들병이라는 단어는 '봄봄'으로 유명한 작가 김유정 소설에서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그 정확한 기원은 조금 불분명한데, 원래는 시골동네에서 술을 파는 들병장수에서 파생되었다고합니다. 조선시대 기생으로 불리지 못하는 최하류 매춘부들을 들병이라고도 했다고 하는데, 일제시대 문학에 등장하는 '들병이'의 삶에 대해서는 김유정 소설속에서 조금 엿볼수 있습니다.
김유정 소설 속 들병이는 남편이 있고 아이도 있지만, 생계가 곤란하여 시골농부들에게 술과 몸을 파는 여자들을 총칭합니다. 먹고살기 어려운 시대에 남자나 여자나 인생의 고달픔에 차이가 있겠냐마는, 들병이라는 단어는 그 시대 여성들이 마주한 삶의 처연함을 보여줍니다.
“들병이가 얼굴만 이뻐서 되는 게 아니라던데, 얼굴은 박색이라도 수단이 있어야지.”
“그래 너는 그거 할 수단 있겠니?”
“그럼 하면 하지 못할 게 뭐야?”
년이 이렇게 아주 번죽좋게 장담을 하는 것이 아니냐. 들병이로 나가서 식성대로 밥 좀 한바탕 먹어 보자는 속이겠지. 몇 번 다져 물어도 제가 꼭 될 수 있다니까 아따 그러면 한번 해보자꾸나.
-김유정소설(안해) 일부-
들병이 남편들은 경제력없고 능력도 부족하며 병약한 경우까지 있으니 오롯이 경제적책임은 여자에게로 옮겨집니다. 한해 소출이 부족하기 그지없는 시골농촌에서 부녀자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라는것이 무엇이 있었을까싶습니다. 결국 남편의 용인아래 이루어지는 매춘이라는 것인데, 이 시골 농촌에서의 매춘은 도심에서의 매춘과는 또 다른 면모를 보입니다.
도심 속 매춘녀들은 낮에 보이지 않습니다. 낮에는 마치 그런 사람은 아예 존재조차 하지않는것처럼 여겨지다가, 해가 지고 하루의 노동이 끝나는 시간이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냅니다. 마치 아무것도 없던 장소에서 갑자기 생겨나는듯한 도심속 매춘녀들은, 어쨌든 평범한 일상과는 거의 완전히 괴리되어있는것처럼 보이죠. 그녀들은 어둠속에서 태어난 장미처럼 화려합니다.
들병이, 시골농촌에서 몸을 파는 여자들은 조금 다릅니다. 낮에도 보이고 밤에도 보입니다. 정숙해야하는 남편이 있는 입장이고 누군가의 어미이며, 어엿한 한 가정의 구성원이면서도 몸을 팔아 삶을 연명해야하는 모순을 지니고 있습니다. 적어도 도심속에서 매춘부는 그냥 딱 그 부분만을 도려내버릴 수 있는 조각처럼 분리되어 보이지만, 시골농촌 속으로 깊숙이 박혀버린 들병이라는 파편은 따로 솎아낼 수 없는 잡초처럼 보입니다. 마을과 동리, 그리고 한 가정의 평범한 구성원이면서, 몸을 파는 여자이기도 한 그들은 매춘부와 정숙한 아내 사이를 온전히 구분할 수 없게 만듭니다.
역사적으로 어려운 시대에 서민들의 호구지책이라는 것은 비참하면서도 모순적인 것들을 견디는것과 다름없었습니다. 들병이 역시 절망과 허무가 뒤섞인 시대에서 오로지 먹고살기 위한 방책이었을테니, 그게 상책인지 하책인지 구분은 의미가 없을것같습니다. 그냥 그런 시대를 지나온 자취가 '들병이'라는 단어로 흔적처럼 남을뿐이죠.
유튜브 알고리즘에 김동인의 감자가 떴길래, 김유정 소설 '안해'가 생각나서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