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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롭지엥 Oct 31. 2020

영국은 XXX입니다.

나에게 이 나라는

영국이라는 나라 이미지가 바뀌었습니다.

신사의 나라 영국에 대해서 생각하면, 유명한 2층 버스와 런던아이의 이미지만 떠올랐지요.


제가 느끼고 경험한 영국은 이렇습니다.


1. 영국은  올드한 나라입니다.


런던 한복판이 아닌, 주택가에 저희가 살 집을 구했습니다.

부동산 중개인이 최신식! 집이라면서 소개해 준 집은 1970년도에 지어진 주택이었습니다.

기본으로 지어진 지 100년 정도 된 일반적인 영국의 주택 사이에서, 70년도에 지어진 50년이 다 되가는 집이 최신식! 집이라고 합니다.


영국 사람들은 클래식한 옛 오래된 것 들을 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주택도 오래된 것을 고치고 수리하면서 살아갑니다.


도로에는 60년~70년 대의 오래된 모델의 클래식 차를 운행하는 사람들을 왕왕 볼 수 있습니다.

배기가스에 대한 특별 세금과 엄청난 수리비와 유지비를 감당하면서 까지 오래된 낡은 차를 몰고 다니는 영국 사람들이 꽤 많이 있어 놀랐습니다.


영국 친구가 말하길, 그분들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분들 이어서 유지비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영국 우리 집에는 누리끼리한 조명이 달려있었습니다.

늘 밝은 형광등 아래에서 살던 우리는 이 누런 조명 아래서 눈이 침침하고 답답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마트를 찾아다니며 하얀색 밝은 조명을 찾았지만, 수요가 없어서인지 마트에는 죄다 누런 조명뿐이었습니다.

아늑한 느낌 때문에 이렇게 누런색 조명을 많이 사용한다고 하네요.


온수와 냉수가 따로 있는 수도꼭지로 겨울마다 손을 닦다가 화상을 입을 뻔한 경험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바로 영국의 오래된 건물에 있는 수도꼭지 이야기입니다.

아직도 영국의 많은 건물에서는 온수용 냉수용 수도지가 분리되어 있습니다.

뜨거운 물이 나오면 화상 입을 정도로 뜨겁고, 찬물은 너무 차서 손이 얼 지경입니다.


지인이 알려 준 영국 수도꼭지 사용의 팁은!  

온수에서 정말 '뜨거운'물이 나오기 전에 다섯을 세고 냉수로 넘어가면 딱 알맞은 온도로 손을 닦을 수 있다고 하네요.

웃픈 수도꼭지 사용 설명서 입니다.


난방과 카펫 이야기를 해볼께요.

영국은 라디에이터로 공기를 따뜻하게 만드는 난방시스템을 주로 이용합니다. 물론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와 같은 빌딩에서는 온돌형 난방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주택의 난방은 주로 라이에이터이지요.

카펫 바닥과 마룻바닥에 있으면, 온도 차이가 극명하게 느껴집니다.

대부분의 서양 집이 그러하지만 카펫 바닥인 이유는 분명히 있어요. 추우니까.


오래된 것을 존중하고 보존하는 문화

그래서 영국만의 고유 색깔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영국풍의 건물 특색, 문화, 분위기 말입니다.



2. 영국은 친절한 나라입니다.


2살 둘째를 데리고 다닐 때 가장 많이 이용했던 유모차.

버스를 탈 때도, 지하철을 탈 때도 큰 불편 없이 이용했던 비결은 바로 친절한 영국 사람 덕분이었습니다.


유모차를 밀고 건물을 들어가려고 하면, 앞에 가던 사람이 끝까지 문을 열고 유모차가 통과할 때까지 잡아주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러더너의 매너입니다.


런던 도심지의 오래된 지하철에는 승강기가 없는 경우가 많아, 유모차를 번쩍 들어 올려 계단을 올라가거나 내려와야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나는 친절한 영국 사람들.

남녀노소 누구라도 달려와 "Can I help you?"  말을 건넵니다.

기꺼이 유모차를 같이 들어 계단을 모두 통과하고서야, 유유히 사라지는 사람들.


그리고, 양보운전

영국에는 좁은 길, 차 한 대만 지나갈 수 있는 좁은 도로가 흔합니다.

그 좁은 도로에서 상대방의 차와 맞닥뜨렸을 때 항상 상대방에서 하이빔 깜빡깜빡 신호를 보냅니다.


한국이었으면, 저 사람이 지금 나를 위협하는 건가? 싸우자는 건가?라는 신호로 느꼈을 텐데, 여기서는

내가 양보합니다, 당신 먼저 가세요

라는 신호입니다.


그러면 양보를 받은 운전자는 최고라는 뜻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거나

손을 들어 올려 고마움의 표시를 합니다.


크랙션이 필요 없는 영국, 한 번도 빵빵 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왜 이렇게 다들 친절하고, 양보를 잘하시는 겁니까?


3. 영국은 여유의 나라입니다.


느리다와 여유롭다는 같은 상황을 두고 부정적으로도 긍정적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 문장입니다.


영국의 행정처리 정말 너무 느립니다. 한국과 비교하면,

사회 전반의 시스템 자체가 느려서 예약을 하고, 기다리는 일이 일상입니다.

보일러를 고치러 온 수리기사는 4번에 걸쳐 보일러를 고쳤습니다.


첫 방문은 그냥 어떤 문제인지 파악하러 왔고, 두 번째 방문은 수리를 해야 할 부품이 없어 다시 돌아갔습니다.

세 번째 방문은 다 고쳤는데 마지막에 필요한 부품이 모자라서 또다시 온답니다.

그렇게 4번째 만에 보일러를 고쳐도 기다리는 영국입니다.


길게 줄을 서 기다려도 느긋하고, 레스토랑에서 식사가 늦게 서빙되어도 좀처럼 불평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느린 시스템이 불편했는데, 하지만 느림은 곧 여유로운 마음이 되었고

영국은 삶에 쉼표가 있는 삶을 꿈꾸게 했습니다.


4. 영국은 우울한 나라입니다.


날씨가 정말 변덕스럽습니다. 하루에 4계절이 다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아침에 쌀쌀했는데, 점심에 화창하게 해가 나더니 여름처럼 덥습니다. 오후에는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가 저녁식사 즈음에는 선선한 바람이 상쾌하게 합니다. 밤에는  비가 내리네요.


한국보다 겨울이 춥지는 않지만, 매서운 바람도 없고 눈이 내리는 것도 드물지만,

이상하게 으슬으슬 추운 영국의 가을 겨울입니다.

뼛 속이 시린 이상한 추위입니다.


날씨가 얼마나 사람의 마음과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지

저는 영국의 여름이 끝나고 바로 시작되는 우울하고 깜깜한 겨울이 지독히도 싫었습니다.

우울함에서 나오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다시 찬란한 여름만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일조량이 부족하고 비가 잦은 축축한 영국에서 3개월간의 여름은 그야말로 천국입니다.

영국 사람들은 찬란한 여름을 위해 깜깜한 겨울을 견뎌내지요.


여름에 영국 집에 방문하신 시부모님은 영국이 너무 아름답고 찬란하다고 하셨고, 이런 좋은 곳에 사는 너희들이 복이 많다고 좋아하셨습니다.


그 반면, 겨울에 저희 영국집에 방문한 남동생은 저의 손을 꼭 붙잡고 말하더군요.

"누나, 불쌍하다. 이런 곳에서 고생하면서 사네. 어둡고 축축하고 난 런던이 싫다. 누나 힘내고 몸 잘 챙겨."


영국에 우울증 관리 부처가 생겨, 국민들의 우울함을 관리할 정도라니

날씨가 사람의 마음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영국 사람들은 각자의 나름의 방법대로 현명하게 이 날씨를 잘 견디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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