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입 베어 문 잇자국처럼 버스가 섰다 간다
누군가 머물다 간 자리에 복숭아 솜털이 앉는다
오래 간지럽다
‘사랑이네 과일가게’는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갖가지 과일들이 향기를 뿜으며 단골이나 낯선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모님은 시외버스 터미널 앞에서 과일가게를 했고 나는 끝도 없이 들어왔다가 나가는 버스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세상에는 떠나는 사람들과 돌아오는 사람들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하나 더, 그들을 지켜보는 내가 있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옷차림과 표정들도 바뀌고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기는 과일도 바뀌지만, 어김없이 다시 돌아오는 제철 과일처럼 버스를 타고 떠난 사람도 꼭 다시 돌아온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사랑아! 사랑!”
엄마는 나를 부를 때 꼭 이렇게 두 번을 반복했다.
처음 ‘사랑아’는 말 그대로 나를 부르는 소리였고 두 번째 ‘사랑’은 서류에 도장이라도 찍는 것처럼 단호함 같은 게 서려 있었다. 보이지 않는 테두리 같은 것들이 나를 향해 둘러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 이름이 싫었다. 대부분의 이름이 다 속뜻을 가지고 있는데 내 이름은 겉으로 열실이 드러나는 거라서 이름에 대한 무게가 나를 짓눌렀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타인에게 나쁜 행동을 하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지 상상만으로도 우울해졌다.
“그놈의 책만 보고 있으면 하늘이 무너져도 넌 모르지? 귀한이 올 시간이야, 빨리 가서 씻기고 간식 먹여. 좀 놀아도 주고.”
귀한이는 네 살이었고 나하고는 여덟 살 차이가 났다. 동생이 태어났을 때 사람들이 그 작은 아이를 바라보며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질투가 났고 그 질투심을 감추려고 나 또한 귀한이를 예뻐하고 사랑했다. 귀한이는 사대 독자였고 늦둥이였다. 그의 존재는 어디를 가나 화제가 되고 웃음꽃을 피우게 했다. 세상에 ‘사랑’은 없어지고 ‘귀한’이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질투가 너무 소모적이라는 생각에 나는 동생의 존재를 받아들였고 동시에 그 아이가 너무 귀찮아졌다. 바쁜 어른들을 대신하느라 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또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말수가 많아지고 꾀가 늘면서 내가 자기를 소홀히 대하기라도 하면 엄마 아빠한테 나를 일렀고 그때마다 난 꾸중을 들었다.
‘맨날 귀한이, 귀한이……, 어디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어린이집 버스를 기다리다가 맞은편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웃고 떠드는 내 또래 여자아이들을 보며 나는 혼잣말을 했다. 정말 그랬다. 귀한이만 없다면, 으로 시작하는 작문을 하라면 몇백 개의 문장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랑이 누나!”
어린이집 버스에서 내린 귀한이는 두 팔을 벌리고 내 품으로 뛰어들어왔다.
“ 이름 부르지 말고 그냥 누나라고 부르라 했지?”
보자마자 나는 으름장을 놓았고 울상이 된 귀한이를 보자 미안한 마음에 다시 성질이 났다. 잡고 있던 작은 손을 뿌리쳤다.
“누나, 손, 손잡아.”
“싫어.”
내 발걸음이 빨라졌고 귀한이는 뛰다시피 내 뒤를 따라오다가 아파트 놀이터 앞에서 내 옷을 잡아끌었다.
“시소 타꺼야 시소.”
“안 돼, 빨리 가서 나 숙제해야 해.”
“시더시더, 시소 타꺼야, 시소, 시소…….”
한 번 떼쓰기 시작하면 진이 다 빠질 때까지 끝나지 않았고 난 그때마다 안절부절못하다가 비위를 맞추기도 하며 상황을 모면하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날은 왜 그런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귀한이가 결국 바닥에 누워 사지를 버둥거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너 정말 죽어볼래?”
급기야 험한 말이 튀어나왔고 내 말에 내가 흠칫 놀랐다.
울고불고 떼를 쓰던 귀한이를 어떻게 집까지 데리고 왔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더운 여름이었고 땀으로 범벅이 된 동생을 씻기고 복숭아를 잘라서 접시에 담아주었고 나는 내 방에서 숙제를 했다. 가끔 등 뒤에서 우당탕 소리를 내며 종이비행기를 날리느라 거실을 뛰어다니는 귀한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랫집 호랑이 할아버지가 쫓아올 거라고 겁을 주기도 했다. 갑자기 등 뒤의 세상에 조용해졌을 때 난 그 평화로운 정적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 평화가 날아다니던 노란 종이비행기가 안방 방범창에 걸려서 동생이 그 아래서 걸음을 멈춘 채 당황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누나, 뱅기, 내 뱅기.”
울음 섞인 소리가 멀리서 들렸지만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지지직, 무언가 끄는 소리가 들렸고 얼마 후 덜컹덜컹 대는 소리가 났다. 나는 화가 나서 들고 있던 샤프를 책상 위에 꽝, 하고 놓았다. 다시 정적이 흘렀다. 그런데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고 온몸의 땀샘이 동시에 열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별일 아니라는 듯 아니 별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천천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거실에 귀한이가 없었다. 조용히 반쯤 열린 안방문으로 들어갔다. 그가 창틀에 올라서서 방범창을 붙들고 종이비행기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창문아래에는 커다란 장난감 박스가 있었다.
“귀한이 너…….”
수십 년 세월을 견딘 아파트 방범창의 헐거워진 나사들이 귀한이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순간 제 기능을 상실한 대못처럼 나사못들이 한 번에 쑥 빠지기 시작했다. 귀한이는 마치 마법의 양탄자 위에 탄 것처럼 허공에서 방범창에 몸을 실었다. 마지막 하나 남은 나사못에 지탱하고 있는 방범창에 매달린 귀한이를 향해 나는 사력을 다해 뛰어갔다. 그리고 장난감 박스를 밟고 올라가 귀한이의 손을 낚아챘다.
“귀한아, 내 손 놓지 마, 꼭 잡아, 절대 놓지 마”
나의 외침은 귀한이를 향하기보다 나를 향한 외침이었다.
마지막 남은 나사못마저 빠지면서 귀한이를 태우고 있던 마법의 양탄자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귀한이는 내 손에 매달린 채 허공에서 약하게 발을 구르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한 채 겁에 질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제발 누구든 달려와 주기를 바랐다. 동화책에서 본 것처럼 푹신한 구름이 와서 받아주거나 커다란 독수리가 와서 내 동생의 옷깃을 물고 유유히 날아가다가 땅 위에 안전하게 놓아준다면……. 하지만 세상에는 귀한이와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축 늘어진 그의 한쪽 손에는 내가 접어준 노란 종이비행기가 들려있었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내 손, 이 빌어먹을 망할 손…….’
감각이 없어진 손은 이제 무엇을 부여잡고 있는지조차 망각할 만큼 저절로 손가락이 하나씩 열리기 시작했다. 귀한이의 작은 손이 내 손 안에서 미끄러지면서 빠져나갔고 노란 종이비행기는 처음으로 높은 곳에서 하늘을 날다가 땅으로 추락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