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성훈 May 16. 2019

여행에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

12) 세계 2차 대전


 다들 한 번쯤은 이민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을 것 같은데, 나도 막연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어디에 가면 복지가 좋아서 일하지 않아도 나라에서 돈 준다던데!’
 ‘어디에 가면 일 년 내내 날씨도 선선하고 평온하고 좋다던데!’
 ‘어디에 가면 오히려 일 할 사람이 부족하다던데!’

 한 군데쯤은 떠오르는 나라가 있을 것이다. 이런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을 수도 있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딱 그 정도였다.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그리고 편리한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바다를 끼고 있는 대도시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열심히 일하고 꼭 성공해서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에 가서 사는 게 삶의 목표 중 하나였다.

 실상, 매매가나 구체적인 입주 조건 같은 건 알지 못하며, 심지어 내가 생각하는 곳이 그곳이 아닐 수도 있다. 그냥 내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가 그렇다. 태어난 곳이 부산이라 향수 같은 게 있는 건지도 모른다. 유독 부산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가본 적도 없는 인천 송도 국제도시와 한때 유행이었던 제주도도 이사지 후보 중 하나였다. 실제로 제주살이를 위해서 꽤 구체적으로 알아보기까지 했다.

 지금은 제주살이의 유행이 사그라든 것과 함께 나의 현실적인 이유가 더해져 한발 물러선 상태이다.






 우리는 페루의 수도인 리마에 도착했고, 리마의 신시가지인 ‘미라 플로레스’라는 곳에 가게 되었다. 이름대로 새로운 시가지를 이루고 있는 곳이라서 한창 발전 중인 건지, 여기저기 공사 중인 곳이 많았고 건물과 도로는 깨끗했으며 결정적으로 해변을 끼고 있었다.


 해변에는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해변 도로 옆으로 절벽이 장관을 뽐내고 있었다. 절벽 위에는 오션뷰를 자랑하는 복합 쇼핑몰과 드넓은 녹지 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이따금 패러 글라이딩 하는 사람들이 날아다니곤 했다.

 뭔가 꿈에 그리던 장소에 온 듯한 느낌에 도취되어, 나는 그만 그곳에서 큰 실수를 저질렀다.

 “나 진짜 여기 와서 살고 싶다!!!”


리마의 미라 플로레스


 그때부터였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해외에서 돈을 벌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방법 모색과 고민을 종용했다. 노마드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했다. 노마 F는 알긴 하는데...


 그녀는 그 궁리를 리마에만 한정 짓지 않았다. 리마 이후로 여행하는 나라나 도시마다 여기서 살면 어떨까를 생각하며 이것저것 재기 시작했고, 나에게도 의향을 물었다.

 계속되는 그녀의 물음에 나도 진지한 대답을 해야 했고, 본의 아니게 내가 가진 재산, 능력, 하고 싶은 일 등 나의 현재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으로선 무리라는 결론이 나왔다.


 미안함을 표하며 나의 상황과 성향 등을 이해시키려 노력했다. 다행히 그녀도 현재의 상황이 여의치 않음은 알고 있다며 막무가내로 보챈다거나 무리를 요구하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다. 그녀는 머릿속에서 이미 70%는 이민을 와 있다. 그리고 지금 여기 멕시코시티에 와서는 80%가 넘은 것 같다.


 마침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카페 창업에 관한 영상을 보는 소리가 들린다. 소름 돋는다. 아까는 멕시코 영주권에 관한 영상을 보면서 어렵지 않다며 감탄하는 것도 들었다.

 문득,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에 겪었던 다툼이 재발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입장 또한 똑같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녀는 이민을 통해 여행하는 삶에 한걸음 더 다가가려 노력할 것이고, 나는 그녀를 저지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물론 상황이 된다면 외국에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만, 아직은 나는 한국이 너무 좋다. 한국의 편리함과 안전함이 좋고, 무엇보다 가족과 친구와 어울리며 살고 싶다. 친숙한 것들의 품에서 안정을 느끼며 살고 싶다. 그게 조금은 지루하더라도 말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세계 1차 대전은 갑자기 일어났고 나는 방어만 하다가 패배하여 세계여행을 당했다.

 하지만 2차 대전은 다르다. 충분히 예견할 수 있고 대비할 수 있다. ‘총’이라는 필승 키워드도 가지고 있다. (총기 소지 허용 국가는 그녀도 기피한다.) 안전을 빌미로 지지 않는 싸움을 할 수 있다.

 그녀에게 이민은 이미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은 나의 편이다. 지금부터 부지런히 타협점을 모색하면 된다. 현재로선 ‘한달살이’가 최선의 방책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쯤에서 다시 한번 절실하게 현실을 깨닫는다.




 나는 여행에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








*세계여행 사진들은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전 11화 여행에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