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대 중반에 접어들고 있었지만, 나는 '2세 계획'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최소한 작년 까지는 그랬다.
생각해 보면 단 한 번도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집에서 강아지며, 고양이며, 품 속에서 꿈틀꿈틀 움직이는 생명체를 키워본 적도 없었고, 사촌 동생이건, 조카건, 하다못해 이웃사촌이건 간에 아이를 직접 안아본 경험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작고 연약한 존재는 낯설고, 때로는 나와 관련 없는 생명으로 느껴졌다.
고등학교 1학년쯤이었을까. 어느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는 다음에 커서 아기가 몇 명쯤 있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을 하셨다. 그 질문에 반 친구들이 일제히 손을 들며 대답을 했는데, 당시 나는 '두 명'에서 손을 들었던 것 같다. 이유는 간단했다. 일단 손을 드는 인원이 많았고, 나도 동생이 있으니까 '두 명'은 익숙한 단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명'일 때 손을 드는 것은-그러니까 질문의 첫 대답에서 손을 드는 것은-뻘쭘하고 민망하니까.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선생님의 질문에 대한 보기에 '0 명'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럴 만도 하지.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거의 20년 전이니까.
성공하고 싶었다. 중견도시에서 자란 나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곧잘 했었다. 그래서 어딜 가나 부모님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그리고 나 또한 꼭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리라 마음먹었다.
그래서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나의 이상적인 모습'도 정해져 있었다. 아마 나이는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 정도겠지. 성공한 나는 그즈음이 되면 자동차 문이 위로 열리는 빨간 스포츠카를 탈 거야. 잘 관리되어 군살 없이 탄탄한 몸매가 살짝 드러나는 어두운 정장을 위아래로 입고 있어. 머리카락은 길지 않고, 적당한 길이의 커트인데, 머리 위로 선글라스를 무심히 올려 뒀어. 굽이 깨끗한 높은 힐은 빛이 나고, 화장은 살짝 진한 편이지만, 그래서 더 자신감이 넘쳐 보일 거야... 그 상상 속에서 나는 늘 일에 몰두해 있었고, 아이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현재의 나는 학창 시절 그리던 이상적인 모습과 꽤 거리가 멀지만, '그 모습'을 이뤄보고자 꽤 열심히 노력을 했었다. 그래서, 다양한 이유로, 나는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해 삼십 대 중반에 접어들 때까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다 작년, '선택의 시점'에 홀로 서있게 되었다.
아이를 낳는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후회를 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선택을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었다. 어찌 되었던 '후회'라는 결과가 비슷하다면 한 번도 도전해보지 않은 '엄마 되기' 루트를 선택해 보기로 마음을 굳혔다.(당시에는 '아이를 낳는다'를 선택하는 순간, 어쩌면 바로 임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당찬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단 한 번도 이 부분에 대해서 대화를 나눈 적이 없던 남편에게 결정을 알려야 했다.
여느 때와 같은 금요일 저녁, 우리는 안주 겸 저녁 메뉴를 가운데에 두고 마주 앉았다. 그동안 2세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던 남편에게 오늘은 그 결심에 대해서 이야기할 작정이었다. 소주를 한 잔, 두 잔 마셨다. 그리고 세 번째 잔을 채우기 전에 입을 떼었다.
여보, 우리 이제 한 번 도전을 해보자. 아기 말이야.
...드디어 이런 날이 오네.
남편은 내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본인이 그동안 보여준 신뢰가 먹혔기 때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기분이 좋다며, 혼자 소주를 한 잔 들이키더니 말했다.
앞으로 몸 관리 잘해야겠다.
그동안 어떠한 내색도 하지 않고 내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을 남편이 안쓰러우면서도 고마웠다.
남편을 만나게 된 것을 내 인생 최대의 행운이라 여긴다. 이는 남편이 '나에게만큼은' 정말로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또한, 남편에게 그런 사람일 것이라 믿는다.)
나에게 남편은 한없이 다정하면서도 본인만의 신념과 원칙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곁에 있는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다치지 않을 수 있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남편을 믿는 이유이자 소중히 여기는 이유이다.
참 좋은 아빠가 될 것 같아.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이 없음에도, 남편은 좋은 아빠가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이 놓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임신도 출산도 육아도 모두 둘이 함께하는 일이니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덜 두려워도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모든 것을 나 혼자 짊어지고 감당해야 한다고만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고, 어쩌면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그래, 우리는 둘이니까 할 수 있겠다.
어쩌면 엄마가 될 수도 있겠다.
남편 덕분에 그동안 없었던 확신이 아주 조금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