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와의 줄다리기

by 가온

5년간 몸담았던 공공기관의 정규직 자리를 내려놓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한결같이 비슷한 조언들을 건넸다.


차라리 임신을 하는 게 어때?

육아휴직 쓸 때까지만 조금 더 버텨봐.


당시 매일매일이 지옥처럼 느껴졌던 내게는 어쩌면 가장 모범답안이었을지도 모를 그들의 말조차, 나를 옥죌 핑계처럼 느껴졌다.


임신은 뭐, 내가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거람?

하는 생각과 함께 마음 한편에서는 이상한 반항심마저 일렁였다.


사람들은 내가 '안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당시 내게 필요한 건 숨 쉴 틈이었고, '나 다움'이었다. 당장 내일을 살아낼 힘이 없는데, 생각해 본 적도 없던 임신으로 이 상황을 모면해 보라는 이야기는 전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원하는 일'을 찾아 프리랜서로 발걸음을 옮긴 후, 내 삶의 만족도는 확실히 높아졌다.


한국어 교육 현장에서 외국인들과 소통하며 삶의 보람을 얻었고, 마케팅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생동감을 느꼈다. 스스로 배우고 성장하는 매 순간이 즐거웠고, 더 나은 나만의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통장 잔고가 들쭉날쭉할 때면, 문득 '그들의 말'이 옳았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고개를 들기도 했지만,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택한 나 자신과 많은 대화를 하며, 나는 퇴사 이후 확실히 더욱 성장했다.




사실 나는 임신을 하면 '나의 인생'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품고 있다.

작은 생명이 내 삶의 1순위가 될 것이고, 그렇다면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들을 최소한 몇 년간은 고이 묵혀두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임신을 해야 한다는 용기가 좀처럼 샘솟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분명 축복이겠지만, 그 축복이 나라는 존재를 완전히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마치 내가 쌓아 올린, 작지만 이쁜 성이 한순간에 허물어질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어릴 적부터 '한 단어'로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는 직업을 꿈꿨던 것은 아니다. 사실은 '아직 적절한 직업을 찾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뚜렷한 방향성을 품고 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며 보람을 얻고,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일.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매일매일 새로운 배움이 샘솟는 그런 일. 이것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직업'의 모습이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아직도 방황 중인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바를 '한 단어'로 충족시킬 수 있는 직업을 아직 찾지 못했기에 나는 여전히 길을 찾고, 새로움에 도전했다가 때론 좌절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지금 도전하고 있는 이 방향이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길임이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는 원하는 내 모습에 한 발자국씩 더 다가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예전에는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나'를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하고,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 비로소 알아가고 있다.


그러니까,


이제야 비로소 '나 답다'는 생각이 들고,

나 자신을 조금은 알 것 같은데,

그리고 지금에서야 내가 원하는 삶을 그려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만약 지금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이 모든 노력이 다시 허무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몇 년간의 경력 단절이 발생해도, 나는 정말 괜찮을까.

혹시라도 아이를 낳은 후 내가 꿈꾸던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

.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문득 내가 너무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울컥 억울함이 밀려왔다.


사람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찾아오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며,

인생에서 무엇보다 큰 기쁨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나도 머리로는 그 말을 이해한다.


하지만 아직 다가오지 않은 막연한 행복보다는,

당장의 보람과 확실한 나의 성장이 아직은 더 중요한 나는,

여전히 커리어와 임신 사이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다 보면,


참, 이렇게 생각하면 올 아기도 나한테는 안 오겠다.

라는 씁쓸한 농담이 절로 나온다.


놓치고 싶지 않은 이 두 가지 소중한 가치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흔들린다.

내가 노력한다면 과연 이 모든 것을 함께 가질 수 있을까?

아니면 이 줄다리기는 결국 한쪽을 선택해야만 끝나는 게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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