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중반의 나이에 접어들었지만, 임신과 출산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결혼도 했고 딩크도 아니라면, 이쯤 되면, 어련히 알고 있어야 할 정보들을 ‘모른다’라고 말하는 일이 점점 쑥스러워지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임신과 출산이라는 일이 나와는 한참 거리를 둔 것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그 세계에 들어가는 일 자체가 막연하고 낯설게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런 마음이 이어지다 보니, 임신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법한 ‘배란일 테스트기’나 ‘얼리 임신 테스트기’ 같은 기본적인 도구조차도 나는 최근에야 지인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걸까.
혹시 내가 뒤처져 있는 걸까?
물론 학교 다닐 때 성교육이라는 걸 받긴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 수업은 정해진 틀 안에서 형식적으로만 흘러갔고, 임신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나 생식 기관의 구조 같은 표면적인 내용에만 머물렀을 뿐, 그 이후의 삶에 대한-이를테면 출산 후에 몸이 어떻게 회복되는지, 산후 우울증이 어떤 감정인지, 출산 직후 배가 그대로인 이유 같은-실제적인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기회가 없었다기보다는 사회 전체가 그런 이야기들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분위기 안에서 정작 궁금한 것에 대해 깊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어차피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
막상 겪어보면 금세 익숙해지겠지.
하는 막연한 믿음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별생각 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이제 임신을 준비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한 후, 당연하다는 듯이 검색창을 열었다.
그리고 놀랐다.
정보는 생각보다 훨씬 많았고, 훨씬 가까이에 있었다.
배란일 계산기, 영양제, 초음파 사진, 출산 후기, 회복 방법, 준비물 리스트 같은 수많은 키워드들이 화면을 가득 메웠고, 다양한 목소리들이 쉴 틈 없이 쏟아졌다. 정보가 부족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넘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든 이야기들 속에서 내가 정말 듣고 싶었던 이야기는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감정이 깊이 물든 후기들은 내 입장과 거리가 멀게 느껴졌고, 의학적으로 잘 정리된 글들은 그 자체로는 유익했지만 정작 내 마음에는 잘 닿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막막하고 혼란스러워졌고, 무엇이 중요한 정보인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내가 알고 싶었던 건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임신을 하면 내 몸은 어떤 식으로 변해갈지,
하루의 리듬은 얼마나 달라질지,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지.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쉽게 만나기 어려웠고, '다정한' 정보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아는 게 없는데, 낳아도 될까.
어쩌면 나처럼 막연함 속에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까.
정보를 찾고는 있지만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서성이고 있는 사람들,
무엇을 검색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혼란과 고민을 어디에 말해야 할지도 몰라 조용히 혼자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사실 이 물음에는 겁이나 두려움만 담긴 것이 아니다.
아주 작고 조심스러운 기대도 함께 들어 있었다.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질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되어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바람이 그 안에 있었고,
이 질문을 진심으로 떠올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이미 어떤 준비의 시작점에 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여전히 잘 모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듣고 싶고,
나다운 속도로 배워가고 싶다.
그러다 언젠가 오늘의 이 조심스럽고 솔직한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을 내가 되지 않을까.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는 조금 더 단단한, '어른'이 되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