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되기,
나의 완벽하지 않은 용기

by 가온

언젠가 인터넷에서 한참 웃었던 글이 생각난다. 생물학적으로는 어른이 된 지 한참인데도, 집에 걸려온 "어른 계세요?"라는 전화를 받으면 으레 엄마나 아빠에게 전화를 바꿔드린다는 이야기였다. 서른 중반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철이 덜 든 나 또한, 그 글쓴이의 마음에 격하게 공감하며 슬그머니 엄마를 떠올렸다. 육십 대 엄마가 나를 대신해서 최대한 명량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시는 것을 상상하니, 이상하게도 마음 한 구석이 씁쓸했다.


삼십 대가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철이 덜 든 나에 비해, 우리 엄마는 스물여덟에 나를 낳으셨다. 엄마는 '그 시절' 치고는 늦게 결혼하신 편이라고 했다. 엄마 친구들에 비하면 몇 년이 늦었고, 덕분에 초등학교 시절에는 엄마가 학부모 모임에서 나이가 많은 분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니까, 엄마가 결혼하고 첫 아이인 나를 낳았을 그녀의 나이는 고작 스물여덟. "어른 계시나요?" 전화를 받았을 때, "엄마! 전화 왔어!"를 외칠 요즘 사람들의 나이에, 엄마는 이미 결혼을 하고 나를 낳았던 것이다. 심지어 그게 몇 년은 늦은 결정이었다니, 여전히 어른이 덜 된 나 자신이 너무나 작게 느껴짐과 동시에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나이에 나의 엄마가 된 엄마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더 옛날, 그보다 더 옛날에는 십 대 후반에 심지어 한 둘도 아닌 대여섯을 낳지 않았던가. 건조기도, 식기세척기도, 로봇청소기도 없던 그 시절, 팍팍한 시집살이 속에서도 아이들을 낳고 먹이고 키웠다. 우리 할머니가 그랬고, 그 윗대 할머니도 그랬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버튼 하나로 집안일을 끝내고 잔고만 있다면 무엇이든 주문할 수 있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내가, '엄마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너무 겁쟁이처럼 느껴졌다. 누군들 처음부터 잘했을까, 누군들 모든 걸 다 알고 시작했을까.


아이를 낳지 않던 이유? 커리어 때문이라고 핑계를 댔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그냥 나는 겁이 났다는 것을. 앞으로 는 나답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겁, 나보다 훨씬 작은 생명을 온전히 지켜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겁,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완벽히 해내야 한다는 겁,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선택 이후에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겁이 나를 짓눌렀다.


하다 보면 되는 것, 하다 보면 느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이상하게도,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늘 첫걸음을 떼기 전에 지레 겁부터 먹었다.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할 가치가 없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믿음이 내 발목을 잡았다.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과 가치는 소외되었고, 아이를 낳지 않아야 하는 이유만 머릿속에서 강해지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답이 아니었다. 나는 내 마음이 원하는 답을 찾고 싶었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었을 나의 엄마를 떠올려봤다. 그리고 세상에 완벽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과정에서 '이러다가 엄마가 될 수는 있을까?'글도 써보기 시작했다. 내 생각을 돌려보기 위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몇 주의 시간이 흐르자, 나의 마음이 어느 정도 정돈 되어, 어쩌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동안 내가 겁쟁이였기 때문에 어쩌면 놓치고 있었을 수많은 충만함이 내 손 끝에도 닿았으면 했다.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하며 불안했던 마음이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래, 함께 성장하면 되지, 뭐.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모두가 처음엔 서툴렀고, 그렇게 조금씩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이 인생 아니겠는가.


어쩌면 이제는, 지금껏 해보지도 않고 겁먹었던 내가 놓치고 있었을 삶의 행복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엄마가 그랬고, 엄마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그동안 나는 선택지 앞에서 망설이며 초조했지만, '엄마가 된다'는 단 하나의 선택지가 남았을 때, 오히려 모든 불안을 내려놓으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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