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줄이기를 바라면서도
한 줄이기를 바라는 마음

by 가온

아무튼 간에, 일단 나는 임신이라는 것에 도전을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생각해 보면, 아이 없이 사는 삶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아이가 있을 내 모습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처럼, 그와는 정반대의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나는 인생이라는 장거리 달리기를 하면서도, '이번 주 불금 때는 뭘 먹지' 하는 생각 정도만 하면서 살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스스로가 다소 한심하기도 했다.


문제는, '그 길'로 향하는 수단은 익히 알지만, '명백한 방법'은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길 가다가 문득 10대를 볼 때, ‘스무 살에만 애를 낳았어도…’ 하는 생각이 아주 가끔은 들곤 했으니, 임신과 출산의 세계에서는 내가 공식적으로 젊지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마음을 먹은 이상 시간을 허비할 여유는 많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도 했고, 지인들에게도 임신으로 향하는 '확실한 방법'을 물어봤다. 모두의 답은 간단했다.


그냥 병원을 가시오.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께서 점지해 주시는 날짜를 다르시오.


그렇게 생에 몇 번 가보지도 않았던 산부인과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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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세상 많이 좋아졌지. 이렇게 확실하게 '스페셜 데이'를 알 수 있다니.

여러모로 시간과 에너지를 아낄 수 있음에 참으로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톡이나 AI만 업데이트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의료기술 또한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발전했음을 느끼면서 또 나만 동떨어진 삶을 살았구나 싶어 '격세지감' 같은 감정이 느껴졌다.





10일 정도의 금주가 이어졌다. 자랑은 아니지만 스무 살 이후 10일 동안 금주를 한 것은 정말로 세 손가락에 꼽을 수 있다. 이십 대 초반 무렵에 급성 신장염에 걸렸을 때, 또.........


근 15년 만에 처음으로 10일 정도의 금주가 이어졌다. 다행히 칼로리도, 알코올도, 설탕도 제로인 0.00 맥주가 그 10일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일등 공신이었다. 임신준비생(?) 커뮤니티에만 들어가도, 나와 비슷한 금주의 상황을 겪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았기에, 그들이 간간이 올리는 다짐의 멘트 한 줄이 큰 힘이 되었다.


얼리 임신테스트기를 쿠팡에서 주문했다. 일반 임테기보다 4~5일 정도 빨리 임신 여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그 키트는, 더운 여름 푹푹 찌는 날씨에도 시원한 카스 한 모금 마시지 못했던 나를 어쩌면 곧바로 행복의 나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또 다른 조력자였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밤새 모은 원기옥을 그 키트에 묻혔다. 그리고 이내 키트의 뚜껑을 덮고, 5분 간 쇼츠를 보았다. 정확한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그 몇 분, 사실 눈은 쇼츠에 가 있었지만 머릿속은 온통 '두 줄이면 어쩌지...', '아 한 줄이면 어쩌지...' 하는, 갈피를 잡지 못할 생각으로 복잡했다.


드디어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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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준생 커뮤니티에서 본 글이 생각났다. 누군가, 본인의 키트 사진을 올리면서, '매직아이로 보면 두 줄 같은데, 임신일까요?' 물었고, 또 누군가는 '제 눈에만 두줄인가요? 함께 봐주세요!' 하며 집단지성의 힘을 빌리려는 사람도 있었다.


나의 경우라면, 두 눈에 혹시나 붙어 있을 모든 먼지를 털어내고 보아도, 0.75 배속으로 보아도 누구나 인정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한 줄이었다. '얼핏 두 줄'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 거지. 혹시나 싶어 자연광 아래에서, 형광등 아래에서 그 작은 네모 칸을 뚫어지게 보았으나 선명한 붉은 라인 하나 말고는 그 어떠한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분명 몇 초 전에 나는

'두 줄이면 어떡하지...' 생각하고 있었음에도, 막상 내 눈앞에 그어진 단호박 만치 단호하며 새빨간 한 줄을 보니 이상하게도 힘이 빠졌고 이내 초조함이 올라왔다.


일단 이번 달은 꽝이다. 그렇다면, 나는 한 달 더 나이를 먹은 거네..

이상한 패배감도 들었다. 그동안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자만하고 있던(?) 나의 모습이 다소 하찮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만약 두 줄이면 어쩌지' 생각하며 몇 번은 초조했던, 몇 분 전의 내가 다시 떠올랐다.

아니, 그럼 어쩌라는 거야. 두 줄이기를 바라면서도 한 줄이기를 바라는 이 마음은 도대체 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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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엄마가 되려면 멀었을까.

아니, 이렇게 하다가 엄마가 될 수는 있을까.


그날도 나는 복잡했고, 씁쓸했으며, 옅은 안도감이 스치면서도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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