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이기 전에, '나'이고 싶은 마음

by 가온

내가 어렸을 적, 엄마는 스스로를 누군가에게 알릴 때 'OO이 엄마'라고 했다. 아니면, 'OOO 씨의 집사람'이라고 했다. 엄마의 자기소개에, 엄마가 없던 시절이 있었다.


열 살쯤 됐으려나, 엄마가 젊었을 적의 사진을 봤을 때가.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가장 젊었던 시절은 삼십 대 후반이지만, 사진 속에는 이십 대 중후반의 젊은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동네에서 나름 옷 잘 입기로 소문난 멋쟁이였다고 했다. 결혼 직후, 아빠가 직접 찍어줬다는 그 사진 속 엄마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큰 바윗돌 위에 새초롬하게 앉아 있었다.

엄마는 벨벳 소재로 된 투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가슴팍까지 오는 긴 머리는 파마 덕분에 무척 풍성해 보였다. 살결이 살짝 비치는 검은색 스타킹은 벨벳 스커트와 잘 어울렸고, 가끔 결혼식에나 갈 때 신을 법 한 뾰족구두도 멋들어졌다. 아직 젖살이 덜 빠진 얼굴에는 주름조차 보이지 않았고, 벨벳 소재와 잘 어우러지는 자줏빛 립스틱도 조화로워 보였다. 그 당시 트렌드를 반영한, 짙은 아이섀도 역시 엄마는 잘 소화했었다. 단연,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했던 것은 웃음기 없지만 에너지 넘치던 엄마의 눈빛이었다. 사진 속 엄마는 강렬하지만 수줍게 핀 장미꽃 같았다.


내가 알 수 없는 엄마의 모습을 사진 속에서 발견했을 때의 첫 느낌은 '낯섦'이었다. 사진 속 엄마가 지금 내 옆에 있는 엄마라고?이상했다. 엄마도 '스스로'였던 시절이 있었구나. 젊었을 적 엄마의 사진을 봤을 때, 비록 그녀가 아름답고 멋져 보여서 괜스레 뿌듯하기는 했지만, 이상하게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요즘은 티브이나 유튜브 등 영상매체에서 뿐만 아니라, 인터넷 신문 기사를 통해서도 참 다양한 육아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중학생 시절, 동경의 대상이었던 '그 언니'가 어느새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학원에 데려다주고 마치는 시간 동안에는 차 안에서 기다렸다가 학원이 끝난 이후 아이들을 데리고 온다는 이야기, 가족끼리 저녁밥을 먹고 엄마가 상을 다 정리할 때쯤 시작되던 일일연속극 속 멋있던 남자주인공이 아빠가 되어 '아이를 위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 이 외에도 본인은 덜 먹고 덜 쓰고 덜 하더라도, 아이에게 더 좋은 것을 해주고 싶어 하는 부모에 대한 이야기들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


어느새 엄마 아빠가 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스토리 흐름은 비슷하다. 처음에는 아이에 대한 자랑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어느새 아이에게 더 이쁜 거 사주고 싶은 마음과,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참게 됐다는 이야기로 끝난다. 나는 남은 자투리 음식을 먹어도, 아이에게는 제일 좋은 거 먹여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친구들은 참 대단해 보이면서, 내가 알던 걔가 맞나? 싶은 생각까지 들게 한다.


아이를 위한 '사랑'으로 '희생'한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아직은 나와 관련 없는 말을 들을 때면, 참 묘하면서도 신기했다.



근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하나도 안 아까운 거야?

더 좋은 거 해주고 싶고 막 그런 거야?



철없는 질문을 던지자, 친구가 어른스러우면서도 통쾌감을 머금은 듯 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도 한 번 낳아봐. 안 그럼 절대 몰라.




우리 엄마도 '본인'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몇십 년 동안은 누군가의 엄마로, 누군가의 아내로 살아왔다. 곱씹어 생각하니 엄마가 안쓰러웠다. 강렬하면서도 수줍은 장미꽃 같던 엄마는 거친 세상 속에서 본인이 선택한 여린 것들을 지켜내고자 강해 졌겠지. 사실 엄마도 누군가의 '약한' 존재였고, 그만큼 여렸을 테지. 생각을 쌓아나가자 마음이 먹먹하면서도 나는 나중에 엄마가 되더라도 '나' 답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에게 말했다.



나는 나중에 내가 엄마가 되더라도, '나'이고 싶어.

아기한테만 좋은 거 먹이고 나는 대충 먹고 그러는 거 말고.

그냥 같이 좋은 거 먹고 그러면 안 되나?



결혼도 안 한 친구가 실소를 머금고 말했다.



야, 내 주변에 너같이 말하던 애들이 제일 애기한테 끔뻑 죽더라.




나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내 자기소개에 '내'가 포함된 엄마가 되고 싶다. 그리고 훗날 아이가 자라 나에게 묻는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엄마는 '엄마'이기 전에, 엄마 '자신'으로 살고 싶었어.

그리고 그게, 너에게도 가장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이라고 믿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