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친구나 지인과 나누는 대화의 주제가 달라진다는 걸 새삼 느낀다.
학창 시절에는 대학만 잘 가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다. 그래서 대화의 주제는 늘 입시와 성적이었다. 거기에 덧붙여, 남자친구가 어떻고, 또 누구는 어떻게 그 사람과 사귀게 됐는지 같은 연애 이야기도 한가득이었다. 생산적이면서도 도파민을 자극하던 이런 대화들은 이십 대 중반까지 이어졌는데, 눈을 떠보니 취업 준비라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어 있었다.
누구는 어디에 붙었다더라, 누구는 공무원 시험을 본다더라, 누군가는 벌써 합격했다더라. 하는 정보를 서로 주고받을 때면 말끝마다 은근한 조바심이 섞였다. 나도 그랬고, 함께 대화를 나누던 '그 누구'도 그랬다.
번듯해 보이는 직장에 안착하고 나면, 자연스레 결혼 이야기가 이어졌다. 결혼할 때 필요한 돈, 신혼집 위치, 신혼여행지, 그리고 아직 결혼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는 고백까지.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고민들은 미소를 띨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지만, 삼십 대 초입의 나는 그 고민이 막막한 허들처럼 느꼈다. 방법은 아는데, 어떻게 넘어야 할지는 알 수 없던 그런 것.
학업, 취업, 결혼… 그다음은?
나는 그다음에 대해서는 별다르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사회의 흐름은 정해진 듯 보였고, 사실 나 역시 그 흐름이 요구하는 ‘정답’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치 그 네 번째 단계-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묘하게도, 내 주변 사람들 역시 나와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아마도 내 사람들끼리여서 그런 것이겠지만, 우리는 참 말이 잘 통했다. 꼭 임신과 출산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할 얘기가 많았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도 꽤 많았다.
잘 모르겠어. 나중에 생각할래.
확실한 건, 아직은 아니야.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나의 생각은 그랬다.
삼십 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주변에 아이가 생기는 친구들이 하나둘 늘기 시작했다. 여전히 나와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도 많았지만, 또 다른 쪽에서는 임신을 준비하고, 출산을 경험하고, 아이를 키우는 또래 부부들이 생겨났다. 뭔가 기분이 묘했다.
어느 날, 지인 부부와 저녁 약속을 잡았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임신과 출산 이야기로 향했다. 그 부부는 조만간 아이를 갖기 위해 준비할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물었다.
어떻게 그 생각을 하게 된 거야? 무슨 확신이 있었어?
확신은 없어. 그냥… 해야만 한다고 생각해. 해. 야. 만. 한. 다.
그날 밤, 돌아오는 길에 혼자 묘한 감정에 빠졌다. '해야만 한다'는 말은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정해진 길이니 가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아직 그 길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보지 않았던 나였기에, 그 말이 유난히 마음에 박혔다.
해야만 한다.
언제든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곧 해야만 한다.
이렇게 생각하자, 지금껏 답을 알면서도 미뤄왔던 내 시간이 순간 허무하게 느껴졌다. 이유를 모를 불안함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러자 생각이 들었다.
임신과 출산은 가볍지 않다. 큰 책임이 따른다.
내가 엄마가 된다고? 그렇다면,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부모님을 생각했다. 그분들께 내가 받은 물질적인 지원, 조건 없는 사랑, 감정적인 돌봄까지 생각해 봤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적 천기저귀를 직접 손으로 빨고 삶으며 나를 키우셨다고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고 여쭙자, 엄마는 '그때는 다 그랬어'라고 답했다.
나는 예민한 아이였다고 했다. 낯가림이 심해 엄마나 아빠 품을 벗어나면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고 했다. 어렸을 적에는 친척을 오랜만에 만나기라도 하면 으레 듣곤 하던 “그 울보가 이렇게 컸네.”라는 말이 단순한 안부 인사말은 아니라는 것을 어린 나도 알고 있었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결국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아… 나는 부모님처럼은 못할 것 같아.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 있었다. 지인의 그 ‘해야만 한다’는 말에 나는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는 것. 그렇다면 나는 결론을 바꿔야 했다. ‘못 할 것 같아’가 아니라, ‘할 수 있을지도 몰라’로.
그래, 지금은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다. 임신, 출산, 육아를 위한 다양한 제도가 있으며, 각종 육아템도 정말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적어도 천기저귀를 손빨래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 어딘가에서는 은은하게 빛나는 확실한 믿음 하나가 있었다. 나는 항상 배우며 발전해 온 사람이라는 것, 그러므로 앞으로 마주할 어떤 일이든,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차근히 배워가면 된다는 것.
그러니까,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려 하지 말고 늘 그랬듯, 하나씩 퀘스트를 깨듯 해 나가다 보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자,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나는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작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우리 엄마는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지금의 내 나이에 우리 엄마는 이미 나와 동생이 있었다.
그녀는 그 어린 나이에 어땠을까. 어떤 생각을 했던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