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A를 처음 만난 건 스무 살, 대학에 입학했을 때였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낯선 도시, 어색한 억양, 처음 보는 사람들 속에서 A는 내가 기댈 수 있는 친구였다. 우리는 함께 과제를 했고, 시험기간에는 밤을 새우며 도서관을 전세 내기도 했다. 술자리에서는 서로의 흑역사를 쌓았고, 가끔은 새벽녘까지 미래를 이야기하곤 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지만 모든 게 가능할 것만 같던 그 시절, A는 내 친구이자, 가족이자,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A에게 남자친구가 생겼고, 뱃속에 새 생명도 찾아왔다. 아직 우리 둘 다 여린 대학생이었던 터라 그 상황은 너무 낯설었고, 나에게는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A는 오래 고민한 끝에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고, 3학년 여름방학이 끝난 뒤 휴학을 했다.
나와 같은 꿈을 키우던 친구는 떠나갔고, 나는 꿈이라는 세상에 혼자 남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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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10여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A는 이제 중학생 엄마가 되었고, 나는 여전히 내 자리에서 ‘어른인 척’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며칠 전, 오랜만에 A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연락을 했고, 아이가 미역국을 끓여주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 말에 괜히 마음이 울컥해졌다가 머릿속에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가 부엌에서 미역국을 휘젓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 들고 따뜻한 눈빛을 지었을 A의 얼굴도 보였다.
A는 이어 말했다.
“하나의 인생을 키워내는 일이 정말 너무 어렵고 힘들지만
엄청 행복하고 보람찬 일이야!"
휴대폰 너머로 내가 알지 못했던 삶의 무게와 깊이가 느껴졌다. 그러면서 오랜 시간 버텨온 그녀의 하루하루가 이제 조금씩 보상받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임신’이나 ‘출산’ 같은 단어가 내 일상에 조금씩 녹아들기 시작하면서부터, 길을 걸을 때면 예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아이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엄마 품에 안겨있는 갓난아기부터 아장아장 걷는 아이, 등껍질같은 가방을 메고 등교하는 아이들까지. 원래라면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을 어린이의 뒷모습이 이제는 가끔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저 아이의 부모는 어떤 기분일까?’라는 생각이 불쑥 떠오를 때면 스스로도 조금 당황하게 된다.
그냥 나는 내 삶을 열심히 살아왔을 뿐인데, 어느새 삼십 대 중반이 되어 있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야, 우리 아직 젊어!” 하며 웃지만, 거울 앞에서는 금방 들통난다. 피부는 예전 같지 않고, 흰머리가 하나둘 눈에 띄고, 술 마신 다음 날은 예전처럼 털고 일어나기 힘들어졌고, 한 끼를 거르면 정말로 배가 등에 붙는 기분이 든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몸이 먼저 말해준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제 내 또래 친구들도 각자의 속도로 삶을 채워가고 있다.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도 여전히 있지만, 어느새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도 제법 늘었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면, 언제부턴가 여행지 대신 아이의 얼굴이 올라 있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그걸 바라보면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나도 언젠가…’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그리고 부러움인지, 조급함인지, 가끔 나도 잘 모를 복잡한 마음이 스쳐 간다. 그러다 문득 내 삶을 다시 돌아본다.
혹시 내가 너무 늦은 걸까?
생각이 들 때면, 괜히 마음이 조급해지고, 나만 제자리에 남은 것 같은 묘한 소외감이 밀려온다. 그럴 때마다 마음 속으로 되새긴다.
"그래, 어쩌면 조금 늦었을지도 몰라. 그런데 이게 내 속도야. 그러니까 누구와 비교하지 말자. 나는 그의 삶을 살아본 적 없고, 그도 내 삶을 살아본 적 없으니까."
어쩌면, 내 인생의 가장 좋은 시간이 이제 시작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