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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on Oct 18. 2022

부모가 믿지 않는 당신의 재능

 기적처럼 씻고 책상에 앉았다. 오늘 하루는 그저 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는 것만으로도 지치고 벅차 집에 가자마자 씻고 잠들 거라고 온종일 다짐하곤 방에 들어오자마자 바닥에 누워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긴 영상을 볼 기운도 없어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쇼츠 영상 따위를 텅 빈 눈알로 넘겨보며 몇 시간을 누워있었는지 모른다. 핸드폰을 보며 드는 생각은 게으른 나에 대한 자책이다. '빨리 씻어야 침대에 누워 편히 잘 수 있는데. 그래야 내일 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데. 또 이러고 있네. 왜 이렇게 게으르지. 재능이 없으면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데.' 예술대학교 학생이 말하는 재능과 노력은 어찌나 진부한지 모른다.


 예대에 들어와 '재능'이란 단어를 정말 많이 들었다. 학교 밖 서른 해 동안 들은 횟수보다 예대 2년 동안 들은 횟수가 더 많을 거라 확신한다. 내가 살던 이전 세계는 재능이 거론될만한 일이 없었다. 경영학과에서 필요한 재능이 뭐가 있을까. PPT를 못 만들면 그냥 더 오래 자리에 앉아 만들면 된다. 공부도 재능이라는 말을 하지만 예대생에게 재능은 좀 더 자격증 같은 개념이다. 재능이 없으면 감히 예술을 시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달까. 물론 이곳에서도 재능이 없다면 그를 메꿀 수 있는 자질이 노력이다. 매년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들의 익명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 늘 올라오는 고민이 있다. 


재능이 없어서 매주 과제를 따라가지 못하겠다.
재능 있는 친구의 결과물을 보면 자괴감이 든다.
재능이 없어서 자퇴나 편입을 고민 중이다.


 예술에는 공부보다 선천적인 무언가, 소위 '재능'이라 불리는 뭔가가 필요하다 생각하는 것 같다. 댓글의 조언도 그런 식이다. 재능이 없으면 더 노력하면 되니 포기하지 말라는. 그래서 재능과 노력은 반비례 관계처럼 들린다. 재능이 부족하면 노력으로 메워야 한다. 입학 초만 해도 그런 글을 보면 재능을 믿지 않았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흘려들었다. 하지만 나도 학교를 다니며 재능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순간들을 목격하게 됐다. 똑같은 시간이 주어져도 더 어린 나이에 훨씬 기발한 발상을 쏟아내는 친구들. 1학년 때 벌써 제작사와 계약을 하거나, 등단 혹은 입봉 해 업계 일을 시작한 친구들. 그런 친구들은 나에게 없는 무언가가 있어 보였고 나도 그걸 재능이라는 단어 말고는 달리 표현할 수 없다고 느꼈다. 그런  결과물을 내지 못한 나는 그렇다면 노력으로 그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적대를 졸업 후 회사를 그만두고 예대에 들어가는걸 부모님은 당연히 반대하셨다. 고작 학창 시절 때 받은 글쓰기 상장 몇 개로 평생 밥 벌어먹고 살기에 부모님은 나에게 작가적 재능이 없다고 판단하셨고 인문계를 거쳐 4년제 대학의 경영학과를 추천하셨다. 대학교에서 부지런히 경영당할 준비를 하면서 나는 무슨 자신감에서 인지 복수 전공한 문창과와 국문과 수업 몇 개로 내가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조언을 구했던 전적대 교수님들도 다시 예술대학교에 입학하는 걸 반대하셨다. 지인 중에 드라마 작가의 길을 보면 순탄치 않고, 사는 것도 힘들뿐더러 학교에 간다고 해서 승산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지금 보면 그 말이 다 맞았다. 하지만 그때는 부모님과 세상이 없다고 이미 결론 내린, 내 안 어딘가 발견되지 않은 재능과 이후 노력 여하에 따라 성공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고 싶었다. 글 쓰는 게 재밌으니 재능이 없다 한들 더 노력하면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학교에 들어와 성과를 내는 친구들을 보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부모도 세상도 인정해주지 않아서 나는 더 빨리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봐라, 일말의 가능성이 내 안에 숨어있다. 조금만 기다리면 성공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며 나를 채근했다. 하루는 반나절 만에 35페이지 분량의 드라마 대본을 써 내려가며 나의 재능을 실감하고, 하루는 한 줄도 쓰지 못해 꾸역꾸역 자리를 지키는 내 노력을 보며 나는 그 둘의 균형점을 잘 지키고 있다 믿었다. 하지만, 진짜 힘든 건 오늘 같은 날이었다. '재능'과 '노력' 그 둘 중 어디에도 기댈 수 없는 날. 재능도 발견할 수 없는데, 노력조차 하지 않는 날이면  나는 나에게 비난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점점 죽기 살기로 임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작가로 입봉 하지 못하면 죽는다고 생각하자. 그러면 뭐라도 되겠지.’ 그렇게 가혹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죽기 살기로 임하자 나는 점점 죽어 마땅한 인간이 되어갔고, 내 삶 역시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형국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경종을 울리는 문장을 선배 예술인의 유서에서 발견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배우 유주은 님의 문장이었다. 


연기가 너무 하고 싶었어. 어쩌면 내 전부였고 내 일부였어. 근데 그 삶을 사는 게 쉽지가 않았어. 다른 어떤 것도 하고 싶지가 않아. 그게 너무 절망적이었어.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축복이지만 그것만 하고 싶다는 건 저주라는 것도 깨달았어. - 배우 유주은


 그분의 문장을 보며 내가 믿는 나의 재능과 노력이 어떻게 내 삶을 망가트리고 있는지 돌아보게 됐다. 한 줄의 문장도 쓰지 못한 하루를 스스로 얼마나 지옥으로 만들고 있었나. 해야 할 일은 끝없이 파도처럼 나를 덮쳐오는데 그런 나에게 허락된 선지는 나를 위한 시간과 에너지를 줄여나가는 것 밖에 없어 보였다. 나를 먹이고, 나를 씻기고, 웃음 짓게 만드는 것들부터 줄여나갔다. 제일 간편하며 평가할 이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성취를 위해 움직일 사람이 나 하나뿐이듯, 나를 돌봐야 할 사람도 나 하나뿐인걸 어떻게 30년을 살면서 매 순간 그렇게 잊고 사는지. 그것에 대한 대가로 해일처럼 내 삶을 덮쳤던 우울증의 쓰나미에 파묻혀 셀 수없이 무너져봤으면서 왜 나는 또 그 비극을 반복하는지. 그래서 나에게 세상이 실패라 말하는 것을 허락하기로 했다. 


 상업 영화나 드라마로 성공한 선배나 교수님들이 학생들에게 빠짐없이 하는 말은 이 업계에서는 절대 빠른 시간 내에 성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첫 작품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되기까지 최소 5년에서 10년이 걸릴 것이고 그 시간을 버텨야만 이 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재능'과 '노력'이란 단어만으로는 그 시간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지난 2년 동안 느꼈다. 설사 드라마와 영화로 입봉 하지 못한다고 한들 나는 다른 선지를 모색해야 한다. 나는 이 세상에 드라마 작가로 성공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온 것이기 때문이다. 말초적이고 단편적인 행복을 추구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드라마'도 '작가'도 내 인생에 수단이고 조연에 불과하다. 내 인생의 목적이자 주연은 나다. 이제 나를 밀어내는 그 무엇도 허락하지 않는다. 극작의 묘미는 반전이다. 과정이 어떠하다고 한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나와 당신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일 것임을 확신한다.  


 끝으로, 앞서 예술인의 길을 걸은 빛나는 배우 유주은 선배님의 명복을 빕니다.




Q. 부모가 믿지 않는 당신의 재능은 무엇이었나요?




서울예술대학교 학생들의 7인 7색 셀프 양육 에세이 내용이 더 궁금하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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