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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미라클 Jul 26. 2023

치료와 감사의 증인이 된 찬양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주만 바라볼지라'

'나만의 음악감상법이나 좋아하는 음악이 있나요?'란 질문을 받고 한참을 앉아 있었어요.

'난 과연 무슨 음악을 좋아할까? 아니 음악을 좋아하긴 할까?' 하는 질문에 '예스'라는 대답을 바로 하지 못하다 보니, 음악이란 단어 앞에만 서면 작아지고 초라해져요.. 복음성가(라떼는 CCM찬양을 그렇게 불렀다) 테잎과 CD 몇 개를 사고, 그때그때 유행했던 노래를 흥얼거리는 게 전부다 보니 나만의 음악 감상법이나 좋아하는 음악도 딱히 없어요.


왜 그렇게 음악과 담을 쌓고 살았을까 잠시 생각해 봐요.

TV를 보거나  라디오 듣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지만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닌 덕에 찬송가와 복음성가만 듣고 불러야만 되는 줄 알았어요. 덕분에 대중음악은 나와 무관한 장르라 생각했고 클래식은 너무 어려웠지요. 더 중요한 것은 음악적  DNA가 별로 없어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그러다 보니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절절한 추억이 없어요.


가끔 지인들이 보내온 걸 듣고 감상한 게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인 제가  '음악 감상법'이란 이름으로  굳이 포장을 해야 한다면 '집안일을 하거나 이동 중 CCM 듣기'정도라고나 할까요? 유일하게 음악을 위해 사치를 한 게 있다면 집회 후 CCM(복음성가) 카세트테이프와 CD를 산 것이에요. 그 테이프가 늘어지고 질려서 소음이 될 때까지 들으며 청소를 하고 이동 중 무료함과 졸음을 달래는 친구로 삼았지요. 대부분 남편과 함께 따라 부르기도 하고 추억에 잠기기도 하면서 우리들만의 콘서트를 했어요.


© matheusferrero, 출처 Unsplash


대부분의 CCM이 은혜롭고 마음을 울리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 나도 모르게 간절하게 담기는 노래가 하나 있어요.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둠의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지라'라는  찬양이에요.



큰아들이 중학교 2학년 때 친구엄마에게 언어폭행을 당한 적이 있어요. 유리알처럼 여리고 해맑던 아들은 산산이 부서져 자퇴와 자살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힘들어했지요. 그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울며불며 매달렸던 기도가 바로 이 찬양이에요. 길을 가면서도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주님'을 찾으며 다시 착하고 맑은 아들로 회복되길 기도했나 몰라요. 그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는지 집회 도중 '한 어머니의 기도를 들었다. 그 아들을 내가 기억하고 있다'는 목사님의 선포기도를 들었어요. 함께 기도하며 교육받던 모두가 얼마나 기뻐하고 뜨겁게 감사했던지 지금도 생생해요. 


가루가 되다시피 깨진 아들이었기에 상처가 치료되고 아물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깊고 큰 상처였기에 흔적도 더 많고 지울 수 없는 기억의 잔상도 더 많았지만 단단하고 멋진 청년으로 자랐어요.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러기에 이 찬양은 우리 가정엔 치료의 음악이고 감사의 증인인 셈이에요. 


© benwhitephotography, 출처 Unsplash


오늘도 '주만 바라볼지라' 중 위 소절을 몇 번이나 흥얼거렸어요. 힘겨웠던 고난의 산을 넘은 지 얼마 안 되고, 새로운 직장 적응과 2주에 한 번씩 제주를 넘나 드느라 몸과 마음이 말이 아니거든요. 이렇게 힘든 고비를 넘어갈 때마다 꺼내드는 귀한 찬양이기에 어린아이처럼 투정 부리고 응석도 부리고 싶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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