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처럼 나누어주는 삶
저는 낯선 장소나 처음 본 사람과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에요.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는 말도 잘하지 않고 드러내지도 않지요. 웬만한 모임에서 2시간 정도 앉아 있으면 너무 피곤해서 힘들어요. 그런데, 마음이 맞고 편한 사람들과 함께하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아주 밝고 쾌활하답니다. 그래서 저를 잘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가 내성적이라고 하면 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째려봐요.
흥이 많고 사교성이 좋다고도 하고 항상 밝고 긍정적이라고도 하는데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것 같아요. 리더의 역할을 해야 하는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학습된 성격이 저의 모습으로 비치나 봐요. 1시간 동안 외근을 나갔다 오면 8시간 동안 사무실에서 일한 것처럼 핼쑥해져요. 이런 내면의 모습과 달리 외적으로 표현되는 모습 때문에 갈등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그건 다른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 저만의 고통이겠죠? 이유야 어쨌든 좋은 에너지를 주는 유쾌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인 것 같아요.
어린 시절 엄마는 ‘콩 한쪽도 나눠 먹으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씀하셨어요. 당신도 없는 살림에 나눠 주는 것을 몸소 실천하시고 즐거워하셨던 건 당연하고요. 그렇게 몸으로 가르쳐 주시고, 가슴으로 전해주신 덕분에 저희 남매들도 나눠 주는 걸 무척 좋아해요. 명절이면 서로에게 선물하느라고 행복한 고민을 해야 한답니다.
그걸 보고 자란 아이들에게도 그 유전자가 흘러넘쳤는지 아주 열심히 즐기고 있어요. 덕분에 저희 집 냉장고는 동네 친구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지요. 어느 날인가 뭐라고 했더니 저한테 배워서 그렇다네요. 하긴, 오빠가 제 뒤만 따라다니면 굶어 죽진 않을 거라고 할 정도이니 퍼주긴 잘 퍼주나 봐요.
몇 년 전에 저하면 생각나는 단어를 지인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요. ‘책’, ‘호기심’, ‘신상’이라고 말하던 지인들과 달리 큰아들이 ‘뿌리’라고 했어요.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희망을 주고 도와주는 일을 하면서, 자기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했다면서요. 거창하게 과학적인 근거까지 들먹여가며 설명하는데 쑥스러우면서도 묘하게 자랑스럽고 진짜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거 있죠? 그때부터 저의 신념이 ‘뿌리처럼 나누어 주는 삶’이 되었어요. 아직은 어린 나무라 많은 것들을 나눠주진 못하지만 조금씩 마음을 전하다 보면 언젠간 어른 나무로 자라 가겠죠? 그날을 위해 성장의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