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자기만의 방'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by 가람

4년 9개월


일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는 마지막 단계는 핸드폰 해약이었다. 떠나기 하루 전 대리점에 갔을 때 계약서에 쓰여 있던 이용기간은 4년 9개월. 그렇다. 나는 대략 5년 동안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있었으며 나름대로 혼자 잘 사는 생활을 지내왔었다. 애초에 고등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날아간 가장 큰 이유도 독립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긴 했지만…) 4년을 꽉 채워 교토(京都)에서 대학 시절을 보냈으며, 으레 ‘평범한 일본 대학생’이 그렇듯이 3학년 2학기부터 4학년 1학기까지 취준생으로 살다가 최고로 암울한 시기를 겪으며 가치관이 바뀌고, 간사이 국제공항 지상직으로 9개월을 지낸 뒤 나의 일본 라이프는 끝이 났다.





한국 행 편도 티켓


남들이 ‘가람상(さん)은 왜 일본으로 유학 오게 된 거예요?’라고 물으면 난 ‘독립이 하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그토록 혼자 사는 즐거움을 인생 최고의 우선순위로 두던 내가 내 손으로 짐을 정리하고 한국 행 편도 비행기 티켓을 끊고 한국 본가로 돌아왔다. 한 순간에 내린 결단은 아니고, 반년 가까이 매일 울고 술 마시며 내린 결론이다.


주민등록상 성인이 되고 나서 지냈던 ‘자기만의 방’에는 미성숙한 부분이 많았다. 나이만 어른이었지 완전한 의미의 독립도 아니었고, 건강한 생활을 보낸 것도 아니다. 한 층 성숙하고 완전한 ‘자기만의 방’을 갖기 위해선 잠시 궤도 수정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에 입학해서 남들 다 한다는 휴학도 안 하고 칼 졸업, 그리고 바로 오사카로 떠나서 공항 일 배우느라 바빴다. 정말 정석처럼 살아왔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이 정석대로 사는 삶의 스피드를 따라잡는 게 힘이 들었다. 원체 겁쟁이라 일탈도 못하고 주위에서 하라는 대로 떠밀려왔는데, 결국엔 그게 독이었다. 내가 퇴사를 결심했을 때 신규 취항하는 에어라인 건으로 회사는 바빴으며, 이에 따른 인사이동도 많았다. 그만두기 좋은 타이밍이었던 것 같다. 해가 바뀌기 전에 좋은 결정을 내려서 다행이다.






자기만의 방


첫 직장에 합격하고 난 후 잠시 한국 집을 방문했다. 서점에 갔는데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미니북 버전이 있길래 구입했다. 대학 시절 수업에서 들어 본 제목이다. 백여 년 전에 쓰인 글이지만 마음을 후벼 파는 구절이 너무 많아 읽고 나니 책은 포스트잇 투성이었다.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따라서 여러분은 사소한 주제든 거창한 주제든 주저하지 말고 모든 종류의 책을 쓰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무슨 수를 쓰든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여행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갖고, 세계의 미래나 과거를 사색하고, 책을 상상하며 길모퉁이를 배회하고, 생각의 낚싯줄을 강 속에 깊이 드리울 만큼 충분한 돈을 갖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소설에만 한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니까요.

≪자기만의 방≫버지니아 울프, 더스토리, 2017, 199-200pp.


어째서 회사 다니는 동안 이 구절을 잊고 살았던 것 일까? 내가 좋아하는 영화든 일본에서의 생활이든 뭐든 쓰겠다고 다짐만 했지, 여러 핑계를 대며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퇴사 후 다시 이 구절을 읽고 나니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그래, 뭐라도 써야 되겠다!’라고.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는 여러분이란 당연하다는 듯이 가사 노동을 하며 독립된 공간 없이 살던 여성이지, 운 좋게 해외 대학 다니며 매 달 용돈 받으며 살다가 회사 다니며 번 돈을 식비로 날려버리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먹고살고 사색하는 행위를 본인 힘으로 이뤄내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글은 지금의 나에게도 울림을 준다. 위 구절이 내가 글을 쓰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만큼 일본에서 ‘자기만의 방’ 얻게 된 뒤의 이야기와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진실된 ‘자기만의 방’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 되겠다.






시네필이 되겠다고 일 년에 영화 100편 넘게 보던 캠퍼스 라이프 & 80군데 넘게 지원했지만 최종 면접까지 불린 곳 이 한 곳도 없어 서러웠던 취준생 시절 & 다사다난했던 첫 직장 생활 까지. 그날그날 배우고 느낀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매일 써온 일기장을 들춰보며 이야기해보려 한다.


재류카드 갱신 방법, 우체국 통장 만드는 법, 국제 소포 부치는 법 같은 건 검색 엔진에 치면 1초 만에 알 수 있기에 여기서는 그런 팁은 쓰지 않겠다. 그냥 ‘이때 이런 생각이 났고 그래서 어떤 영화를 봤다’ 같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위주가 되겠다. 직접적으로 조언을 줄 수는 없어도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분들에게 ‘아, 이렇게 의식의 흐름대로 사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매우 열심히 살고 있구나’, ‘나 정도면 유학 와서 시간 헛되게 보내지 않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 글을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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