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람 상은 왜 일본으로 유학 오게 된 거예요?

자기만의 방이 생기다

by 가람

누구의 도움 없이, 나 혼자 산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모든 것이 순탄했다. 학원을 운영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입시 전략에는 빠삭했고, 운까지 겹쳐 원하는 고등학교의 원하는 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도 엄청난 노하우와 집념으로 아이들의 성적과 스펙을 관리하셨기에 나도 많은 상담 끝에 일본 유학이라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좋게 말하면 최고의 서포터즈 덕분에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자율과 주체 없이 살았었다. 모두 남이 해줬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 전화해서 문의하는 법도 몰랐고, 스마트 폰 앱으로 길 찾는 법도 몰랐으며 카드 결제도 어떻게 하는지 몰랐었다.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나만 할 줄 모르는 것이 많다는 걸 깨닫고 나 자신이 작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러면 취업은 나발이고 대학 생활도 제대로 못 할 것 같아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그나마 잘하는 일본어 특기를 살려 일본 유학을 결심했다.


이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면 지금 다른 길을 걷고 있을지도. 이미지 출처 : 드라마 <유성의 인연> (TBS, 2008)


마음먹은 김에 언어도 문화도 다른 곳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나를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2병 시절 일본 드라마 <유성의 인연> 1화 첫 장면에서 니노미야 카즈나리가 「大人になったら、犯人探して3人でぶっころそうな。」라고 대사 치는 모습에 반해 그가 속한 아이돌 그룹 아라시(嵐)의 팬이 되었다. 일본 드라마를 통해 귀동냥으로 회화를 익히고, 일본 예능 자막으로 가타카나를 배웠으며, 아라시 멤버 이름으로 한자를 익혔다. 그렇게 공부하다 보니 그래도 내가 일본어로는 반에서 손꼽을 정도가 됐다. 매일 이어지는 작문, 회화, 문화 수업을 통해 일본어 실력은 나날이 일취월장했다. 꼭 일본 대학 들어가겠다는 집념으로 공부했었다. 내가 결정을 내려 그걸 위해 노력한 적은 처음이었기에 너무 재미있었다.






교토에서, 나 혼자 산다.


목표로 했던 문부과학성 국비 유학생 선발에서는 떨어졌지만, 일본의 옛 수도 교토(京都)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다. 윤동주 시인과 정지용 시인이 다녔던 학교이자 흔하지 않게 빨간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 매력적인 곳이다. 2014년 3월 24일, 김포 국제공항에서 간사이 국제공항으로 날아가 재류카드를 발급받아 정식으로 일본 중장기 체류자격을 얻었다. 입학식은 4월 1일. 자취방 입주일도 4월 1일이었기 때문에 한 일주일 간은 교토역에 있는 한 호텔에서 지냈다. 그 사이 구약소에서 전입 신고를 하고, 우체국 통장을 개설하고, 핸드폰도 계약하고, 필요한 물건들을 샀다. 이런 업무가 처음인 데다가 회화도 잘 안돼서 서러웠지만 내가 해냈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좌- 봄날의 캠퍼스. APR.14 우-가을의 캠퍼스. 05.NOV.18


처음으로 얻은 자기만의 방. 05.APR.14



마침내 4월 1일이 왔다. 부모님과 함께 대학 입학식에 참석한 후 4년 동안 지낼 자취방에 첫 발을 들였다. 드디어 ‘자기만의 방’ 이 생긴 것이다. 물론 내 돈으로 계약금과 월세를 내지 않았지만 육체라도 독립할 수 있다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내 결정을 밀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에 감격하며 호로요이도 한 캔 마셔주고, ‘4년간의 값진 기회를 어떻게 하면 잘 이용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문득 1983년 이탈리아 산타 체첼리아 음악원으로 유학길에 오른 조수미 씨가 다짐 5가지를 일기장 맨 앞에 써두었다는 인터뷰가 떠올랐다. 좋은 습관은 따라 하고 싶은 마음에 나도 첫 독립을 자축하며 2014년의 일기장 맨 앞에 다음과 같이 꾹꾹 써내려 갔다.


1. 어떤 고난이 닥쳐도 꿋꿋이 이겨내며 약해지거나 울지 않을 것.

2. 절대 약하거나 외로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늘 도도하고 자신만만할 것.

3. 영화와 삶에 온통 치중할 것.

4. 항상 깨끗하고 자신에게 만족한 몸가짐과 환경을 지닐 것.

5. 말과 사람들을 조심하고 말과 행동을 분명히 할 것.

(조수미 씨 버전의 3번은 어학과 노래에 온통 치중할 것.)


주변이나 드라마에서 ‘유학 갔다가 방탕하게 생활하고 망한 케이스’를 많이 봐서 인가. 나도 그렇게 될까 봐 무서워서 나 자신에게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생활이나 공부뿐만 아니라 나중 가서는 다이어트도 하겠다고 열심히 식단 계획, 운동 계획까지 세워서 알차게 보냈다. 남들은 왜 이렇게 인생 빡빡하게 사냐, 좀 놓을 줄도 알아라, 등등 훈수를 두었지만 그래도 이 다짐 덕분에 흔들릴 때도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입학식이 있고 나서 일주일 후 2014년 4월 7일. 새내기들을 맞이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동아리 부스는 철수되고 어수선한 내 방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될 무렵 대학교 1학년 1학기가 시작됐다.

keyword
이전 01화prol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