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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랑비메이커 Sep 23. 2023

S의 말 "이제 우리는 전우야, 함께 전쟁터로 향하는"

혼자만의 전투를 벗어나는 순간

     혼자가 늘 익숙했다. 혼자서 걷는 산책, 혼자서 해치우듯 해결하는 끼니, 혼자서 보는 영화, 그리고 혼자서 하는 나의 일.

    혼잣말을 뱉듯 시작되는 글쓰기를 외롭다고 느껴본 적은 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찬란한 계절을 마주할 때면, 의자가 푹 꺼지도록 몇 줄의 문장과 씨름하는 내가 가여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C.S루이스, 메리 올리버, 이어령 선생님, 박완서 선생님...... 내가 사랑한 이들의 문장들을 떠올린다. 마음을 콕콕 찌르던, 머리를 차갑게 깨우던 그 문장들도 모두 고독의 시간들로부터 왔음을 상기하면, 혼자만의 낮밤이 더 이상 초라하지 않다. 도리어 거추장스러운 것들로부터 벗어나 자유한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오롯이 나만이 존재하는 세계. 양해를 구할 것도 이해를 바랄 것도 전부 내 안에 있다.


     그리하여 온전하다고 느꼈다. 지난 8년간 나는 성실히 내게 기댔고 나를 책임졌다. 깊이 뿌리를 내리며 쓰는 삶을 다지는 동시에 좁은 우물 안에 갇힌 듯 고립감을 느끼기도 했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글을 쓰기 시작하여 겁도 없이 첫 책을 낸 스물셋 대학생이 3년 차 1인 출판사 대표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부침이 있었는지는 그간 썼던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나의 세계를 일구듯 누구의 방해도 없이 오롯이 홀로 한 편의 이야기를 쓰는 일 외에도, 책을 만드는 일은 혼자였다. 책의 판형을 정하고 레이아웃과 표지를 디자인하는 일, 유통과 회계 업무는 물론 매일 알람 시간에 맞추어 마케팅 콘텐츠를 게시하는 일까지 나의 손과 발이 미쳐야만 했다. 매일이 전투였다. 다수의 사람들이 한 팀을 이루어 하는 일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홀로 해내는 일은 그야말로 소리없는 아우성이었다. 칼도 들어야 하고 창도 던져야 하는데, 방패도 필요한데 손이 두 개뿐이라 괴로웠던 시절이 있었다. 이따금 용병처럼 여기저기서 나타나 도움을 주던 이들이 있었지만 나의 몫을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이 마음에 썩 내키지 않았다. (고마움과는 별개로) 손발이 척 맞지 않아서 생겨나는 웃픈 해프닝을 겪느니 혼자 전장으로 뛰어드는 편이 편했다.


     그러던 혼자가 아닌 함께 싸우고 싶어진 것은 S의 담백한 한마디의 말 때문이었다.

     가을이 다가올수록 야위어 가는 것은 3종의 신간과 큰 페어를 준비하는 나만이 아니었다. 매일 퇴근 후 나의 사무실로 출근하는 연인 S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 집중하면 끼니를 고집스럽게 미루는 나를 위해 늦은 밤 야식을 사오고, 퇴근이 기약없이 늦어져도 말없이 책을 펼쳐 읽는 S에게 물었다. (30분이면 다 마칠 수 있다고 했는데 2시간이 다 지나서야 겨우 사무실을 빠져나오게 되던 날 밤이었다.)

     내 일 때문에 제대로 된 시간도 함께 보내지 못하고 며칠 째 같이 늦은 밤이 돼서야 겨우 밖을 나서는데 속상하지 않으냐고, 나라면 화가 날 것 같다고. 나란히 길을 걷던 S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애라야, 이제 우리는 전우야. 전쟁을 함께해야 하는데 내가 어째서 애라, 너에게 화가 나. 우리는 힘을 모아서 함께 싸워야 하는 걸."


     별 말 아니라는 듯 힘주지 않고 말하며 싱긋 웃고는 등을 보이던 S. 마치 날씨 얘기를 하듯이 자연스럽게 나의 전우라고 말하는 그에게 나도 별 말은 전하지 못했다. 다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S의 말을 곱씹었다.

     함께하기로 한 시간에도 나머지 공부를 하듯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을 붙들고 있는 나에게 서운한 기색 하나 없이 늘 대단하며 존경의 마음을 전하던 S, 나는 나를 향한 그의 한결같은 찬사와 순전한 응원에 존경에 존경을 더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밤낮없이 허둥대는 나를 참견의 말없이 지켜보던 S는 새까맣고 선명한 동공으로 또 어떤 응원의 말들을 보내고 있었을까.


      '도움은 늘 품앗이처럼'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일을 새로운 짐을 얹는 일처럼 여기곤 했다. 그러나 스스로를 나의 전우라고 말하는 S에게만큼은 복잡한 생각 없이 기대고 싶어졌다. 언제 떠나버릴까 두려운 용병이 아니라 생사고락을 함께할 나의 전우라는 S의 말을 무턱대고 믿고 싶어졌다. 기꺼이 서로의 시행착오를 함께하고 비뚤어진 투구를 바로 씌워주고 이따금 절뚝거리는 걸음을 부축해 주면서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냐, 됐어. 괜찮아, 충분해. 마음만 받을게, 혼자 할 수 있어. 습관처럼 혼자가 되는 말을 뱉던 나는 이제 부채감 없이 순전한 고마움을 전하며 S를 찾는다.


"오늘은 신간 도서 발송 업무해야 하는데 와줄래?“

 "이 글 어떤 것 같아? 한 번 먼저 읽어볼래?"

"다음 책 표지 색상은 이 두 가지를 고민하고 있어."


     나에게는 예리한 정답보다는 담백한 격려의 말이 필요하다는 것도 S를 만나며 배웠다. 아직은 나의 전우 S에게 받기만 하고 있지만 이 작은 글이 그에게도 격려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어 전한다.


      "S. 소리 없이 나의 전우가 되어줘서, 그러기로 마음을 먹어줘서 고마워요. 우리 이따금 전쟁에서 지더라도 싸우기를 멈추지 말자. 나도 작지만 단단한 방패가 되어볼게."





S, 나와는 MBTI도 성향도 정반대인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리하여 가장 잘 들어맞는 나의 전우. 우리의 전술이 합쳐질 때 세상 두려울 것이 없지!


연재인의 한마디

9월의 신간 에세이 <숱한 사람들 속을 헤집고 나왔어도>, <고요한 세계에 독백을 남길 때>, 에세이 실용서 <오늘은 에세이를 쓰겠습니다>가 출간되었습니다. 많은 사랑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도서 <오늘은 에세이를 쓰겠습니다>는 에세이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을 위한 노하우 글쓰기 실용서입니다. 슬기로운 쓰기 생활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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