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끗, 피다

by 일뤼미나시옹



뜨거운 태양 아래 산책 중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내 어릴 적 먼데 노동 갔다가 새카맣게 뙤약볕에 그을린 얼굴로 귀가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양철지붕에 쏟아지는 폭염의 열기를 받아낸 아버지

산책 길 끄트머리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 아버지 생각나서 영천 호국 묘지로 차를 몰았다.

마른오징어와 소주 한 병을 들고 찾아가는 아버지

소줏잔에 술을 붓고 마른오징어를 찢어 놓고 절을 하고 숨을 멈추고

짧은 침묵!


호국묘지 출입문 안쪽엔 작은 수련 연못이 있었지만

무더위를 탓하며 차에서 내리진 않고 지나쳤다.

그때, 호랑나비 한 마리가 햇빛에 새카맣게 그을린 몸으로

차창 앞을 가로질렀다. 힐끗, 곁눈으로 나를 보고 갔다.


힐끗, 내 입가에 미소가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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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er Lilies

1908. Oil on canvas. 101 x 90 cm.

Tokyo Fuji Art Museum, To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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