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림읽기

에곤 실레를 위하여

by 일뤼미나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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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토 예프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작가는

사랑은 중노동과 같다고 했다.

사랑하면서 살려면

중노동 하듯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멋진 말이고 무서운 말이며

정곡을 찌르는 말인지....

중노동의 사랑

우린 할 수 있는가?

그저 네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지 말해봐라

난 이것을 줄 테니 넌 이것을 다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사랑법이다.

비단 남녀의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도스토예프스키는

인류애

인간애에 다한 사랑에

중노동이란 무거운 단어를

사랑이라는 말 곁에 두었다.

에곤 실레의 그림에서

우리는 거북함. 외설스러움.

고통, 밑바닥 인생살이 엿볼 수 있다.


예술가들의 삶이 모두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예술가들은

태생적으로 혹은 기절적으로

반사회적이거나

비윤리적인 삶을 살아온 이들이 많다

그들에게

사랑은 중노동으로 태어난 작품으로 만들어진다

인간 보편성에 대한 고찰

당대의 삶과 인간의 문제

또는 근원과 미래의 문제까지

예술가들은 언제나 항상

그 너머

그 너머

바라보았기에

당대의 시대와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반사회적 행동을 하고

격리된 삶을 스스로 찾아가거나

이웃과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며 산다.


중노동의 사랑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선 부모는 중노동을 한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열심히 노동해서 미래의 삶을 준비한다

사랑하기는 중노동처럼 힘든 것이다.


사랑하자, 중도동의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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