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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Feb 08. 2022

빛을 벗다

 

 빛을 벗다

  - 김정용


 쉬면서 음악도 쉬고 먹기도 쉬고 

 잔 돌멩이 든 호주머니도 쉬고

 방바닥을 훔치던 물걸레도 쉬고


 신발에서 양말에서 쉰내에서 빠져나온

 발의 유일한 기쁨은 맨 발 일 때

 냉수에 들어가 열 손가락이 만족할 때까지

 비누칠 없이 

 냉수욕하고 나왔을 때

 발이 빛을 벗을 때


 발의 빛은 나였기에

 얼마나 개운한가


 쉬면서 예프게니 오네긴도 쉬고

 필사적인 가뭄도 쉰다

  

 냉수를 겪어본 적 있을까 싶게

 마트에서 산 뽀얗게 흰 꽃, 

 이름도 안 보고 집은 자잘하고 하얀 꽃

 얼떨결에 함께 쉬게 되었다


 이름을 묻지 않고 쉬는 거

 동참하고 빛을 벗자


 햇살에 들어가서 

 모두 자기 빛을, 쉬기 전의 빛을 

 벗자


 오후여, 너도 빛이 있다면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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