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저녁. 퇴근길에 단골 식당에 들러 아내와 둘이 칼국수를 먹고 있었다. 손님은 우리 둘 뿐이었다.
소고기 고명이 씹히는 사골 육수까지 거의 다 먹어 갈 때쯤, 대여섯 정도 될 여자 아이가 벽장 속에 숨었다가 툭 튀어나오듯 가게로 들어섰다.
뒤에 바짝 따라온 엄마가 유리문을 위에서 한 손으로 살짝 밀어 여는 그 틈으로 얇은 몸을 쏙 집어넣은 아이는 큰 눈이 반짝거리며 외쳤다.
"안녕하세요, 저는 주아에요"
방금 막 돌아가기 시작한 에어컨 바람소리가 잠깐 들리지 않을 만큼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듯이 내뱉으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신이 나 보였다.
의자가 그네인 냥 짧은 다리가 앞뒤로 흔들거렸다. 그러다 나와 눈이 잠깐 마주쳤지만 두 손을 모은 채 주방 안쪽만 뒤꿈치를 들고 연신 들여다보려 했다.
몇 번을 와 본 곳인 듯 익숙해하는 것 같았다. 명랑했다. 사장님이 앞쪽으로 나와 눈인사를 한 뒤에야 엄마가 앉은자리 맞 의자 위로 엉덩이를 쑥 집어넣고 앉았다.
우리 테이블 옆에 서 있는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하는 엄마의 뒷모습과 칼국수 그릇을 양손으로 들고 오르내리는 나를 번갈아 힐끔거렸다.
얇은 핑크빛 입술은 다시 인사를 하고 싶은 것처럼 오물거렸다. 그런데 '띵동'하는 주문 소리와 동시에 주방 안쪽에서 사장님이 홀을 향해 무어라 외쳤는데, 때마침 가게앞을 지나친 버스 방구 소리에 지워졌다.
나는 듣지를 못했는데, 아이와 등지어 앉아 있던 아내가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 후 고개를 파묻고 먹고 있는 내 정수리를 향해 작은 소리로 그 아이를 돌아보며 그랬다.
"아저씨가 잘못했네"
무슨 소리지? 하는 내 눈빛에 이내 그 엄마가 아이를 돌아보며 그런다. '우리 다음에 다시 와야겠다. 오늘 칼국수가 다 떨어졌데, 주아야'
반죽이 다 떨어져 칼국수를 팔 수 없었던 거다. 내가 먹고 있던 칼국수가 마지막이었던 건데, 그 주아는 그 집에서 칼국수 메뉴 하나만 먹던, 어린 단골이었던 거다.
나는 괜스레 미안해져 얼굴을 가리던 그릇을 내려놓고 먹던 것을 멈추었다. 아이 엄마는 아내의 말에 소리 없이 웃으면서 우리 둘을 향해 눈인사를 건넸다.
순간, 어린 영혼은 어쩌면 너무나 맛있게 먹고 있는 내가 동화책 속에서나 본듯한 게걸스운 못생긴 그 무언가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아의 시선은 내가 내려 놓은 칼국수 그릇을 거쳐 내 얼굴을 슬쩍 건너 본 후 엄마에게로 옮겨가 묻고 있었다. '그럼, 난 뭐 먹어?'
굶주린 실망은 나의 침묵 속에서 더 깊게 느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일부러 크게, 천천히 사과했다.
"아저씨가 미안해"
들어올 때보다 한참 기운이 빠진, 시무룩한 얼굴로 가느다란 엄마팔에 매달리듯 나가는 주아의 뒷모습을 한참 쳐다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십분만 일찍 왔으면 나눠줬을텐데. 진짜 미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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