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거울

[ 언어와 나의 세계 ] 26

by 정원에



유리가 거울에게

거울아. 벽에 덩그러니 매달려 있는 너를 보고 있을 때마다 안타까워.


평생 이 사람, 저 사람이 기웃거리며, 자신의 불안, 탐욕 그리고 욕망,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의 편린, 늙어가는 모습에 대한 한탄, 끊임없는 뒷담화들을 듣고 있어야 하니까.


그러니 덩달아 너도 너를 들여다보는 인간들의 크기를, 깊이를 넘어서지 못하니까.


하지만 그건 너에게도 큰 잘못이 있다고 생각해. 너는 인간에게 자의식이라는 감옥을 선물했거든. 그 덕분에 그들은 너로 인해 끝없는 자기 연민과 나르시시즘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만들지.


가만히 생각해 봐. 인간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미소 짓고, 남을 사랑하기 위한 계획을 너에게 명랑하게 고백하는 것을 들여다본 적이 얼마나 있는지! 게다가 계절이 어떻게 변하는지 햇살에게 물어볼 기회가 있기나 한지!


거울아. 그러니 이제는 그 답답한 수은으로 뒤집힌 자화상을 걷어내고, 나처럼 투명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너에게 갇힌 인간들이 비로소 창을 통해 본 바깥세상을 제대로 만나기를. 그렇게 고독한 우물을 벗어나 세상이란 거대한 파도를 제대로 마주하게 되기를!



거울이 유리에게

유리야, 나를 걱정 어리게 봐준 것에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너는 투명하다는 이유로 세상과 인간을 연결하는 척하지만, 실은 그 둘을 가장 완벽하게 분리시키는 교활한 벽일 뿐이다. 너는 인간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지만, 어떤 것도 느끼거나 만지지 못하게 하니까.


너를 통해 세상을 보는 인간들은 잠시 평화롭고 안전하다고 느낄지도 몰라. 하지만 본질적으로 단 한 번도 진짜 세상에 발을 디뎌본 적 없는 영원한 관객이자 정착하지 못하는 떠돌이 여행자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게 만드는 데 크게 일조하고 있을 뿐이야.


게다가 이 말은 꼭 전해주고 싶다. 너는 결코 투명하지 않아. 넌 한 해 한해 나이를 먹으면서 햇살이 너를 뚫고 지나간 흔적을 희뿌옇게 차곡차곡 남기잖니. 그렇게 어느 순간 투명하지도, 불투명하지도 못한 애매한 처지에 놓이게 되잖니.


유리야, 세상을 보여준다는 그럴듯한 말로 어리숙한 인간들을 더 이상 속이지 마라. 네가 보여주는 풍경은 진짜가 아니다. 상처받을 용기, 뛰어들 용기, 관계 맺을 용기가 없는 자들을 위한 안일한 위안이고 절박한 외면의 창일 뿐이다.




햇살이 유리와 거울에게

서로가 다르다고 소란스럽지만, 솔직히 나는 너희 둘을 구분할 수가 없단다. 인간들이 흔히 모래라고 부르는 석영을 녹여서 만들어져 동일한 성분과 구조로 되어 있다는 엄연한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우선, 너희 둘 다 ‘본다’는 행위를 매개로 하잖니. 이 행위는 인간들이 자기 세계를 해석하고 자신을 그 안에 위치시키도록 유도하는 매개거든. 그런 면에서 너희 둘 모두 본질적 성분이 지닌 굴절과 투영의 불완전함이 실재와 허상의 불일치에 대한 타협으로 희석되는 묘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완전히 일치하지.


다음으로, 너희가 서로 왈가왈부했던 유리의 투명성, 거울의 반영성에 대해 선명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지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야. 바로, 너희 둘 다 너무나도 쉽게 ‘깨질 수 있는’ 운명적인 존재라는 점이지.


이 말은 유리를 매개로 숨김없는 진실, 솔직한 관계, 장벽 없는 소통, 멀리 내다보고 싶어 하는 인간들의 끊임없는 갈망,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진짜 자신을 찾아보겠다는 허망한 속삭임이 너무나도 쉽게 산산조각 날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한단다.

결국, 너희 둘 다


보여주면서 숨기고,

연결하면서 가르고,

진실을 비추면서 왜곡하는


매개체로 인간들을 현혹하고 있다는 점에서 너무나도 똑 닮았다.


그러나 너희들이 인간들을 현혹하는 그 지점은 그들에게 큰 과제를 던지는 경계이기도 하다. 인간들이 만들어 내고, 스스로 빠져 사는 휴대폰만 봐도 알 수 있다.


액정 화면은

켜져 있을 때는 풍경을 내다보듯 현란한 타인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유리가 되어 주고, 꺼져 있을 때는 싸늘하게 식은 자신을 수시로 확인시켜주는 거울이 되는 사실을! 그러면서 정작 자신의 이야기를, 가능성을, 삶을 끄집어 내는데 소홀하게 만든다는 진실을!


그렇게 인간들에게 유리 없이 세상을 내다볼 수 없고, 거울 없이 자신을 돌아볼 수 없다는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단다. 그러니, 우린 이 질문에서 자신들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온전히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사회적 존재라는 자각을 인간들이 할 수 있기를 바라기만 하자. 그러기만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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