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뭉클 May 27. 2022

치매의 시작. 아빠도 두려웠을까.



아빠의 치매를 처음 알아차린 사람은,

아빠였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이상한 것 같다고, 아무래도 치매인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친할머니는 한쪽 귀가 안 들리다가 나이가 더 드시면서 양쪽 귀가 멀었다. 그리고 치매가 왔다. 이명에 시달리던 아빠도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았기에 그런 걱정을 하나보다 했다. 치매에 걸린 것 같다는 그 무거운 말을 듣기가 싫어서 그런 말은 그만 좀 하라고 했다.     


시간이 흐르며 정말 아빠는 이상해져 갔다.

세탁기, 냉장고, 선풍기와 같은 생활 속에서 기본적인 단어들을 깜박깜박 잊었다. 좀 전에 물어봤던 질문을 처음 하는 것처럼 마냥 반복했다. 그리고 점점 같은 질문을 하는 텀이 짧아졌다. ‘밥 먹었냐’ 혹은 ‘어디 갔다 왔냐’ 질문을 10분도 안돼서 반복해서 되물었다. 현관문, 창문들을 열어두는 것을 불안해하고, 강박적으로 문을 닫았다. 시계, 휴대폰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그걸 찾는데 하루에 많은 시간을 썼다. 돈도 얼마 없는 볼품없는 지갑을 누가 가져갈지도 모른다며 집안에 숨기고 그걸 찾아내질 못했다.

“아 미치겠네. 이게 어딜 갔어?”

한참을 괴로워하며 찾다가 딸들이 이불 아래, 텔레비전 아래 수납장, 소파 밑, 호주머니 등을 뒤져서 찾아주면 안도의 한숨을 크게 쉬었다.     


처음엔 보건소에 가서 문답 형식의 치매 검사를 했는데 치매가 아니라고 했다. 병원에 가서 MRI를 찍었는데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일시적일 뿐이었고, 치매가 진행되어 어느 만큼의 기준에 이르렀을 때 병원에서 치매 판정이 났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의사 선생님의 치매 선고가 내 가슴을 쾅쾅 내리찍었다. 아빠가 치매에 걸렸다는 것이 돌이킬 수 없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아빠가 아프다. 우리 아빠가 치매라는 병에 걸렸다. 이 병은 아빠의 삶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물이 쏟아졌다. 슬픔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막막함과 두려움이 뒤섞였다. 

     

아빠에게는 나이가 들어서 기억력이 떨어진 것뿐이라고 하며 치매라는 병원 판정을 말하지 않았다. 마음 약한 아빠에게 오히려 병에 안 좋은 영향을 줄 것 같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빠는 병원에 다녀온 이후로 자신이 치매 같다는 얘기를 더는 하지 않았다. 자신이 치매냐고도 묻지 않았다.      


동생이 어느 날 아빠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아빠는 말없이 일기를 쓰고 있었다. 우리에게 차마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혼자 일기장에 적어내려 갔다.           

  


2014.6.20. (금)

(중략)

나의 뇌 속에 검정 투성이인 정밀사진 : 술은 절대 금하라는 의사의 지시가 있었다.

내가 삶을 몇 년을 유지할까? 갈수록 어두워진 기억력     

: 어깨만 좀 좋아지면 헬스클럽에 나가고 싶다. 오래 생명을 지킨다기보다는 질병이 걸리지 말고 적당히 살다 가는 게 나의 희망이다. 생각이다.      

힘들게 사는 내 딸들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 전혀 수입이 없는 나 오직 내 딸들만 의지하고 살아가는데 딸들 결혼을 하고 나면 축하해야겠지만 : 솔직히 나는 어떻게 지내야 할까? 억지 죽음은 힘들겠지. 자살 : 힘들고 상상하기도 싫고

돈 없이 삶을 지탱할 수 없다. 하여간 살아 있는 동안 (질병, 암) 걸리지 말고 지내다 조용히 살아지는 게 나의 생각이다.           


2014.6.26.(목)

오늘은 목요일 예방센터에 나가야 하니까

샤워하고 나이 드신 누이분과 함께 치매 센터에 가서 가벼운 운동도 하고

암기 상태도 해보고. 그림 그리기까지 했다.

제발 정신이 좀 더 맑아졌으면 좋겠다.

집에서도 가벼운 운동을 해야겠다. 노력해 보자. 좋은 생각을 하면서 희망을 갖자.

내 사랑하는 착한 딸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정상인으로 돌아와야겠다. 꼭 돌아와야 한다.  




아빠도 겁이 났을까? 치매라는 병에 걸렸다는 게, 앞으로의 자신이, 자신의 삶이 두려웠을까. 그리고 슬펐을까? 치매에 걸린 후 자신의 속마음을 우리에게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아빠가 우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괜찮은가 막연히 생각했다. 아니, 아빠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서 제대로 알지 못했다. 감당해야 했던 간병의 일들과 내 슬픔과 두려움에 허우적대느라 아빠는 어떤 마음일지 들여다보지 못했다. 또한 그 안에는 아빠는 치매에 걸렸으니깐 생각과 감정도 무딜 거라는 판단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아빠는 나보다 더 절박하고 많이 슬펐던 것 같다. 아빠가 차마 우리에게 말하지 못한 말들을 일기를 통해 뒤늦게 듣는다.





2014.06.20. 금 아버지 일기 일부
2014.6.26(목) 아버지 일기








*동생이 운영하는 "아빠와 나" 유튜브입니다. 아빠와의 생활을 저는 글로, 동생은 영상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큰 힘이 됩니다. ^^


https://youtube.com/shorts/P_nymVaORE0?feature=share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