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60대 중반에 치매 판정을 받았다. 아직 이른 나이였다.
치매라는 병이 주는 압박과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은 우리가 함께 노력해서 치매 진행을 늦출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부모가 아이를 공부시키듯 우리는 아빠를 공부시켰다. 동생은 열심을 내었다. 벽에 영어 알파벳과 한글 판넬을 붙여 아빠에게 간단한 단어를 수시로 암기하게 했다. 한글 공부, 색칠 공부, 퍼즐 맞추기, 숫자 세기, 콩 고르기, 책 읽기, 노래 부르기, 한게임 고스톱 치기, 휴대폰 어플로 더하기 빼기 연습하기, 운동하기 등을 하며 뇌를 자꾸 훈련시켰다. 아빠는 운동에는 비협조적인 경우가 꽤 있었으나, 나머지 공부들은 열심히 했다.
그런 노력 때문인지 의사 선생님께서는 치매 10년 차인 아빠의 치매 진행속도가 느린 편이라고 했다.
<퍼즐 맞추기 연습>
동생 : “맞아, 거기야. 그래 그 위에. 그렇지 거기야. ”
아빠 : “안 맞아 여기”
동생 : “아 그 옆에다. 옆에. 그렇지 그 옆에. 여기. 응. 오~응. 아주 잘하고 있어”
“그렇지. 아니야, 옆으로. 얘 얼굴을 맞춰야지 얼굴을.”
아빠 : “여기?”
동생 : “응. 뒤집어야지. 뒤집어서. 한 바퀴 돌려 봐 봐. 그렇지 그렇지.”
아빠 : “아하~ 이거를 못했었네. 늙으면 할 수 없다니깐”
동생 : “괜찮아. 잘하고 있어.” (사그작, 사그작. 과자 먹는 소리)
“아니야. 그 아래야. 맨 아래. 응 그렇지. 오~"
아빠 : “이거 맞지?”
동생 : “오 아주 잘하고 있어. 그렇지~!”
<색칠 공부>
<한글 공부>
동생 : “돌고래~!”
아빠 : (따분해하며) “돌고래.. 참 별게 다나와.”
- 옆에서는 치이익 치이익 치이익~ 저녁밥이 다 되어간다.
동생 : “아빠. 벌. 꿀벌이네 꿀벌.”
아빠 : 못내 끄덕끄덕.
<바느질 연습>
“잘한다~!. 아빠, 바느질 되게 잘하네”
“히히히.. 언제 해봤어야지, 이거를..”
“흐흐.”
<공원 운동>
내가 허리를 뒤로 재끼며 “으윽~”하니
아빠도 날 따라서 허리에 손을 척하니 짚고 까닥이며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숫자를 센다.
허리를 돌리자, 아빠도 허리를 돌리며 노래를 시작한다.
“늴리리야 늴리리. 늴리리 맘보. 정다운 우리님 늴리리~ 리리리리리리리~ (가사를 까먹었나 봄) 님 계신 곳을 알아야 알아야지~.”
오른쪽 팔을 오른쪽 귀에 붙이며
“아빠. 이렇게”
“이렇게?”
아빠가 노래를 멈춘 사이 귀뚜라미가 찌르찌르 운다.
<물건 구매 연습>
“아빠 계산하는 거야~ 지금.”
머뭇머뭇 눈치를 보면서 아빠는 오천 원을 건넨다.
“주세요. 이천오백 원이네요.”
아빠와 동생을 아는 단골 편의점 주인아저씨가 돈을 받았다.
아빠가 지갑을 펼친다. 꼬깃하게 접어서 넣은 지폐를 보며
“여기도 있네~” 동생을 보며 웃는다.
편의점 아저씨도 옆에서 돈이 많이 있다며 맞장구를 쳐준다.
“잔돈이에요. 여기 이천오백 원이에요.”
“잘 먹을게. 아빠.”
편의점 아저씨 도움으로 물건 구매에 성공했다.
<한게임 신맞고>
아빠는 무조건 'Go'만 해서 게임머니를 잃어버리기 일쑤
<젠가 숫자 세기>
“23, 24, 25, 26, 27, 28, 29, 30, 31까지 됐고.”
“잘하네 아주~”
“그다음에 32.
“오케이~”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1, 52, 53, 54.”
“오케이~와~~!! ”
똑똑한 우리 아빠. 순서대로 다했다.
<노래 연습>
아빠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노래는 아빠의 마음에도, 치매를 늦추는데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콩 고르기 연습>
지금 아빠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남아있는,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것이다.
아빠가 본인의 이름 석자는 아직 잊지 않고 쓸 수 있는 것에 대한 안도감.
아빠가 퍼즐 한 조각을 돌려내어 제자리에 끼워 넣을 때의 환호.
색연필을 그림안을 꼼꼼하게 채워냈을 때, 씩씩하게 숫자를 순서대로 셀 때, 콩을 골라내어 종류대로 분류를 잘했을 때의 대견함과 기쁨.
목욕을 무사히 마치고 말간 얼굴로 우리를 보며 귀엽게 웃는 아빠의 얼굴.
예전 아빠처럼 가끔 우리에게 ‘미안하다. 힘들지?’ 말을 건넬 때 얻게 되는 위로.
더 많은 시간이 절망스럽고 슬프다. 일렁이는 바다는 사납게 넘실대며 시퍼렇게 우리를 적신다.
넘실대던 바다가 어느 날은 바다가 은모래 위에 오밀조밀한 조개를 올려두었다. 슬픔 속에서 고운 것들을 찾아낸다. 아빠의 치매가 아니었다면 당연하게 여기고 넘겼을, 의미를 두지 않았을 것들이 햇살 한줌 되어 우리의 마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