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로 그들은 출동한 현장에서는 감정 반응을 차단한 채 현장 처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참여자들은 다양하고 참혹한 사망 현장에 반복적으로 출동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의 누적, 두려움, 잔상 등과 같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들이 사망 현장을 마주하게 되면 담담하게 현장 처리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에 있을 때는 최대한 심리적, 감정적 동요를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그 때문에 되도록 시신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또 이 사망자는 나와는 상관없는 처리의 대상이라는 식으로 생각을 하며 현장 처리에만 일부러 몰두하였다. 즉 현장에서 처리에 집중하는 순간에는 시신을 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 시신의 잔혹함으로 인한 공포 등을 의식적으로 차단하며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후 처리가 완료된 후에는 현장에 대한 기억, 특히 특정 장면에 대한 잔상 등으로 인해 그때부터 감정적, 심리적 동요가 나타나게 되고 그 결과 출동했던 외근직 소방공무원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망 현장에서 심하게 훼손된 사체를 보거나 하면 두렵긴 해요. 근데 어차피 계속 봐야 할 일이고, 이런 거로 제가 어려움을 겪으면 소방관 생활하기 어렵고 이걸 그냥 직업이라고 생각하니까 좀 덜 와닿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 스스로 보호막을 치는 거 같아요. 그런 것을 봄으로 인해 제가 충격을 받지 않게끔 ‘이건 일이다.’, ‘이건 볼 수밖에 없는 거다.’라는 생각을 계속하는 거 같아요."
- 구조대원과의 인터뷰 내용 -
다섯 번째로 그들은 감정 불능을 경험하고 있었다. 인터뷰에 참여한 소방공무원들은 다양한 사망사고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과정에서 경험이 누적됨에 따라 처음 현장에서 느꼈던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의 감정이 줄어들고 있었고 사망사고에 대해 무덤덤해지고 업무적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또한 참여자들은 사망사고 현장에서 사망자의 가족이나 주변인들이 호소하는 슬픔의 감정에 인간적으로 공감하지 못하게 되면서 자신의 인간성이 무뎌지는 것 같음을 경험하고 있었다. 즉 소방공무원들은 모두 반복적으로 사망사고와 사망자를 접하게 되면서, 죽음에 대해 무덤덤해짐, 죽음에 대한 애도와 공감의 상실과 같은 자신의 비인간화 경험 등 자신의 인간성에 대한 부정적 영향력은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을 경험하고 있었다.
"감각이 무뎌지는 게 좀 있는 거 같아요. 뭐라 해야 하지, 희로애락이 있잖아요. 사람마다 슬픈 일이긴 한데 제가 더 한 것도 자주 보다 보니까 지인들과 이야기할 때 ‘그것보다는 더한 것도 있어.’ ‘그것보다 더 심한 케이스도 많고 그것보다는 나아요.’ 뭐 이런 식으로 자주 말하는 거 같아요. 음…. 생각해보면 이전보다 다른 사람 슬픔에 약간 동조하는 게 둔해진다는 느낌…. 그건 좀 있더라고요."
- 구급대원과의 인터뷰 내용 -
여섯 번째로 반복적 사망사고 경험은 그들에게 불안감을 확산시키고 있었다. 소방공무원들의 반복적인 사망사고의 경험은 점차 자신들이 사망사고를 대하는 생각과 태도 등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들은 참혹한 현장을 또 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인해 출동 자체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또 그들은 반복적 사망사고 노출에 따른 누적된 스트레스가 어느 날 갑자기 폭발되는 건 아닌지 불안감이 높아진다고 이야기하였다. 이외에도, 자주 사망사고를 경험하면서 이런 사고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안전에 대해 강박적으로 집착하게 되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고 하였다. 즉 이를 통해 반복적 사망사고 경험은 소방공무원들의 정신건강과 삶의 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여전히 소방공무원들은 스트레스가 더욱 가중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망 사건들을 계속 접하면 그게 저도 모르는 사이 계속 쌓이는 거 같아요. 대화로 푼다고는 하지만, 한쪽에 계속 쌓이는 거 같아요. 이런 거로 인한 불안감은 지금은 없는데 지금은 건강하고 활동적이고 체력적으로도 왕성하니까, 근데 혹시 나중에 제 몸이 약해지고 뭔가 어떤 계기가 생기면 이게 나에게 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 구조대원과의 인터뷰 내용 -
일곱 번째로 그들은 직면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었다. 참여자들은 사망사고를 소방관으로서 겪어야 할 하나의 필수 과정이라 생각하고 이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 이들은 사망사고 현장을 피하기보다는 오히려 장차 겪게 될 다양한 사망사고 현장까지도 미리 상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또한 현장 출동 시에는 맞닥뜨릴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여 이에 대해 준비를 하며 출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이들은 사망사고를 피하기보다는 각자의 방식으로 직면하고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나아가 좀 더 나은 현장 대응을 위한 자신의 역량 발전 계기로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제가 생각하기에 사망사건이라는 것은 소방관으로서 퇴직할 때까지 겪게 되는 과정 일부라고 생각해요. 당연히 소방관으로서 겪어야 할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소방관으로서는 필수죠. 그것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는 거니까요. 그리고 그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직렬이잖아요. 저희한테는 피해 갈 수 없는 하나의 과정인 거 같아요."
- 구급대원과의 인터뷰 내용 -
참고 : 외근직 소방공무원의 반복적 사망사고 노출 경험과 극복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 한국화재소방학회 Vol. 35, No 4, pp. 97-106, 2021, DOI: http://doi.org/10.773/KIFSE.b7253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