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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품 Sep 13. 2024

밭에 가고 싶어


24년 가을초입의 무더운 비날



쪽파씨를 2차로 심고, 브로콜리 방울양배추 양배추 무 배추 상추 콜라비 모종을 심고, 고수 시금치씨를 뿌렸다. 누렇게 지고만 정글 같던 토마토를 걷어내니 훤하여 보기 시원하고 그 덕에 우뚝 솟은 오크라가 눈에 들어왔다. 봄에 덮어둔 비닐멀칭을 가을에도 재사용한다. 사실 벗겨내고 싶지만, 이 더위에 풀은 가을농사라는 말이 무색하게 잘도 자라니 내심 까만 비닐에 풀매는 시간과 체력을 기대는 속내도 있다. 그래도 가을텃밭은 씨를 심던 모종을 심던, 나는 두둑의 산을 쭉 칼로 그어 비닐을 열어젖히고 심는 편이다. 아직 한여름 무더위를 방불케 하는 땀샤워를 하지만 맑은 날, 하늘은 높다. 민둥민둥한 봄텃밭과 다르게 가을은 아직 땅콩이 수확을 기다리고 있고, 오이가 끝물이지만 줄기들이 엉겨있고, 맷돌호박과 울타리콩은 지지대터널을 주체할 수 없이 넘실거리고, 가지는 이때다 싶게 가을가지를 주렁주렁 달고 늘어져있고, 토란잎은 어린이우산만큼 평수를 넓히고, 깻잎들은 짙은 향을 품고 가슴팍까지 자라있고, 보돌보돌한 근대가 봄부터 내내 자리를 지키는 가운데 조만조만한 서로 다른 모종들이 심겨있고 씨를 심어 아직 소식 없는 민둥한 두둑을 한눈에 넣는 순간은 높은 가을하늘과 어우려저 그야말로 행복이다. 너무 아름답다. 이런 정원이라면. 비가 삼일을 장마처럼 쏟아진다. 작디작은 모종과 씨앗들은 이 비를 먹고 힘을 얻을 것이다. 못가니 더더욱 궁금한가. 내가 주는 수돗물에 비할 수 없는 영양제이므로 텃밭에 가지 못한다 해도 그저 안심이다. 나는 나날이 더 농부가 되고 싶다.  24.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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