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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장가 휘파람 Apr 14. 2016

꽃과 시간이 빚은 황홀한 정원  선암사

순천 조계산 선암사





꽃이랑 나무가 있는 곳은 어디든 좋다



공기 맑아 상큼하고 누구를 만나도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어 너그럽고 어렴풋 싱그런 추억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생동감이 있어 참 좋다.


푸른 산길을 거닐면 기분은 날아가고 녹색 가운데 샛노랑 혹은 새빨간 꽃을 만나면 너무 좋아 방긋방긋 혼자 거니는 발걸음에 웃음꽃을 한 아름 피우기도 한다.


꽃을 바라보고 냄새를 맡고 쓰다듬기만 해도 행복이 기울고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니 꽃은 얼마나 신비로운 신의 선물인가. 이백은 꽃을 품어 춤을 추고 노래하며 자연의 섭리를 시로 남겼다.


꽃밭 가운데 술 항아리

함께 할 사람 없어 혼자 마신다.

술잔 들어 밝은 달 모셔오니

그림자까지 셋이 되었구나…….



도시를 벗어나 숲으로 들어가면 힐링이다

해맑은 바람 상큼한 소리 청아한 향기가 행복처럼 감싸 안는다



푸근하고 편안한 선암사





산과 숲이 어딘들 없을까 마는 평지처럼 편안하고 산속처럼 푸르면서도 사람의 이야기 유유히 흐르는 곳. 가족끼리 손잡고 두런두런 걸을만한 곳 중에 하나가 산사이다.


마음을 씻어주고 영혼을 정갈하게 해주는 산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산사는 고요가 유영하며 맑은 공기에 휩싸인 채 도시에 지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지리산 주변과 남도에는 그런 절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화엄사 천은사 실상사 쌍계사 연곡사 태안사 백양사 운주사 쌍봉사 보림사 대흥사 도갑사 무위사 송광사 선암사가 그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순천의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이편과 저편에 마주 선 두 개의 절 송광사와 선암사가 그리워진다. 그중에서도 나무 좋고 아담하기는 선암사만 한 곳이 있을까!


선암사는 조계문(일주문)에 이르는 산길처럼 편안한 진입로만 거닐어도 영혼이 해탈을 얻을 만큼 예쁘고 찬란하다. 이처럼 풍요롭고 아름다운 길은 남한 어디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길은 푸르고 푸르게 수천 년을 이어온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다. 숲 아래로는 해맑은 개울이 넓지도 좁지도 않은 모습 그대로 넉넉하게 흐른다. 나무뿌리를 비켜서고 바위를 돌아 아래로 노래하듯 잘도 흘러내린다. 물 흐름은 뿌리를 간질이고 가지를 웃음 짓게 하며 행복을 노래한다. 개울가엔 벌깨덩굴 병꽃나무 가막살나무가 인사라도 건네는 듯 바람에 미소를 담아 살랑인다.

개울을 건네주는 승선교는 얼마나 단아하고 맵시 좋게 섰는지 모른다. 그런 다리를 건넌 개울가 곁엔 어여쁜 정자 강선루가 잠시 쉬어 가란다.

그 자리 그 순간을 즐기라는 듯 발걸음을 끌어당긴다. 개울물이 가슴에 스며 졸졸 휘감아 돈다. 산그늘에 영혼이 침잠한다.


시키는 대로 잠시 쉬어감이 옳지 않은가? 무에 그리 바쁘고 무에 그리 정신없어 건네준 호의조차 무시한 채 지나칠 수 있단 말인가


여유 낭만 느긋함이 입구에서부터 맘을 편히 하고 마음을 간질이니 얼마나 넉넉한가.



어여쁘고 섬세하며 가지런한 개울가 오솔길을 거니노라면


행복한 일들이 가슴을 간질이고 오해하고 아쉬워하며 마음 끓이던 속세의 일들조차 깃털처럼 가볍게 여겨진다. 마른 잎 하나 맨 하늘 그늘에 떨어지듯 사소한 일이 되며 한가하게만 여겨지는 것이다. 조잘조잘 개울의 노랫소리에 한탄과 답답함이 녹아 멀리 흘러간다.

그러니 자연의 한적한 길을 거니는 것만으로 마음이 싱그러워지고 부드러워지며 너그러워진다. 이런 마법 같은 행복이 어디 있을까. 우린 포용의 공간을 하나 더 지니게 된다.


굽어지고 이어지는 길을 돌아 일주문에 도착하는 순간 자연이 벌여놓고 사람의 손길로  매만진 환한 나무들의 공간이 펼쳐진다. 산사 안쪽의 싱그러운 신비로움이 자꾸만 가슴을 충동질한다.


오래고 오랜 돌담을 지나고 토담을 거닐며 기와 담을 스치는 발걸음마다엔 신기한 나무들이 줄줄이 늘어선다. 산사의 집들이랑 담장을 거니노라면 어마어마하게 이어지는 나무들의 도열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하늘에 닿을 듯 땅에 내려선 무량수전과 삼성각 앞의 와룡송은 세월을 한껏 품어 신선의 경지에 이른 모양으로 선암사를 끌어안고 있다. 사계절 정원이라 불릴 만큼 꽃나무로 빽빽한 절집 선암사의 나무들이 궁금해진다.




봄날의 선암사 얼룩 동백



봄날의 선암사라면 무위전과 팔상전 담장에 흘러내리는 홍매와 백매가 장관을 이룬다. 이에 질세라 생강나무 살구와 복숭아 자두 배 사과 철쭉과 백당나무 불두화 산딸나무 층층나무 태산목이 봄의 기쁨을 수놓는다.

절집 마당으로 넘쳐흘러 기와 담장을 타고 왕벚꽃 능수벚꽃 겹벚꽃 자산홍 영산홍 진달래 목련이 물밀듯 차올라 울긋불긋 꽃물을 넘실거리며 앞을 다투어 멋을 내고 자랑을 한다.


산사 곳곳엔 형형색색의 나무 천여 종이 구석구석 공간마다 자릴 차지하고선 그윽한 멋을 자아낸다. 쩍쩍 벌어진 손가락처럼 시퍼런 팔손이나무. 백당나무 배롱나무까지. 절 뒤쪽 굴목이재의 편백나무 숲과 그 아래 노랗게 피어난 들꽃까지 절과 산과 개울가까지 이어진 나무와 꽃의 향연으로 선암사는 자연의 냄새 가득 영혼을 목욕시킨다.


오동나무 자귀나무 배롱나무 모감주나무 치자나무 석류나무는 여름철을 제철이라 뽐내며 꽃 자랑을 한다.

이에 질세라 단풍나무 밤나무 상수리나무니 굴참나무 떡갈나무 후박나무 녹나무 붉가시나무 종가시나무 호랑가시나무 마가목 먼나무 남천과 산죽은 단풍을 자랑삼아 가을을 수놓는다.


나무에 홀려 거니노라면 시간을 늘리게 된다. 그러니 화장실 갈 시간을 한참 지나치게 된다. 그러니 서둘러 찾게 되는 것이 뒷간이다. 마치 깐뒤처럼 보이는 대변소(해후소)가 급한 마음에도 참 아름답다. 그곳에 앉아 신선처럼 일을 본다. 늘 거추장스럽고 피하고 팠던 뒷간의 일.

선암사에서 뒷일을 보노라면 먹는 기쁨만큼이나 배설의 기쁨이 얼마나 행복하고 찬란한가를 새삼 깨닫는다. 마치 프랑스 작가 아폴리네르처럼.  아폴리네르는 파리의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화장실을 고집했고 그런 근사한 곳이 아니면 뒷일을 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그이기에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나는 취하다"는 낭만 가득한 시를 쓸 수 있었는가 보다. 뒷일조차 그토록 깔끔하고 화려하며 멋을 추구하는 이라면 그의 낭만이 얼마나 섬세하고 순결했을까는 쉽게 헤아릴 수 있질 않을까!


검정 바탕에 흰색 글자의 대웅전 현판을 단 선암사엔 시간을 멈춘 듯 주저앉아 온종일을 보내고픈 곳들이 참 많다. 나의 여행은 지나치기보다는 한 곳에 머무는 쪽이다.


떠나기 싫을 만큼 좋은 곳이면 언제까지고 느긋하게 머물러 그 순간을 오래오래 누리며 온갖 상념을 떠올리길 좋아한다.

금당벽화를 그리기 위해 무수한 날을 비우고 비우던 담징처럼 주절이 주절이 열리는 환상을 부풀리고 온갖 추억을 들여다보며 주억거린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아무런 생각 없이 눈앞에 펼쳐진 경이로운 풍경 앞에 망연자실 마음은 비우고 비워진 텅 빈 상태로 주저앉아 잠시간의 행복을 누린다.


나의 여행은 여럿이 몰려다니는 여행엔 끼질 못한다. 그런 곳에서라면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여행이라기보다는 아프고 아쉽고 답답한 곤욕의 길이 되기 때문이다




나의 여행은 자유로운만큼 쓸쓸하고 얼핏 그윽하다.


선암사 무우전 매




시간에 쫓기지 않고 남의 눈치 보지 않고 구석구석 어여쁜 자태를 뽐내는 나무나 풍경이나 건물이나 어느 공간을 마주 보는 재미가 남다르고 맛깔나는 까닭이다. 고목나무 곁에서 나무와 말을 하며 나무의 삶을 물끄러미 떠올려보는 순간은 희열이다. 삶의 의미가 된다. 나른하고 무미건조한 시간의 싱그러운 생동감이 되곤 한다.


코끼리 거죽처럼 거친 기둥에 구멍이 나고 번개 맞아 시커먼 속내를 품은 저 편 썩어가는 삭정이를 품어 앉은 사이로 아이 입술처럼 보드랍고 자그마한 잎사귀가 나풀거린다.

이것이야말로 시간의 희망이며 삶의 의미 아닐까!

지나칠 수 없고 훌쩍 떠날 수 없는 이유이다. 어린 잎사귀와 나누는 이야기에 삶의 깨달음이 향기롭다.


나무가 말을 걸어주니 마주 앉아 웃음꽃을 피운다. 오랜 인연을 낯선 거리에서 마주한 것처럼 푸근하고 얼떨결에 만난 행복 속으로 의외의 흥겨움으로 빠져든다.


나무 곁에 선 걸음은 느려지고 자꾸만 이리저리 자식의 옷매무새를 살피는 부모의 마음처럼 찬찬하고 섬세하다. 나무랑 선 길은 뭔가를 주어야 할 듯하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나무야 앞으로도 잘 크렴, 언제까지고 싱그러운 모습으로…….

나의 영혼이 네 속에 들어오는 그날까지!"


산사의 걸음은 느려지고 마주 안은 얼굴엔 묵언으로도 충분히 헤아리는 편안함이 햇살처럼 흐른다.

언제든 찾아가면 맞아주는 나무와 산사가 있어 행복하다.

오늘도 선암사 오랜 나무들과 둘러앉아 맞웃음을 짓는 행복에 빠져 일어설 줄 모른다.




냇물이 흐르는 싱그러운 강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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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휘파람






글 사진

휘파람

2016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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