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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숲 Nov 17. 2022

등산 _첫째 날

덥게 잤는데도 갑자기 콧물이 나오길래 혹시 몰라 자가진단을 해본다. 역시 이상이 없다.


지인이 보낸 등산 사진은 고꾸라진 의지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울긋불긋 물든 가을 산과 구름 한 점 없이 쨍한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그녀는 그야말로 위풍당당했다. 며칠 전부터 가야지 벼르고만 있었다.     


기묘할 정도로 더운 늦가을 날씨지만, 혹시나 산속은 추울까 싶어 구입한 기모 바지와 얇은 목 티에 패딩 조끼를 걸쳐 입는다. 물병과 카드, 당 떨어질 때를 대비한 초콜릿이 든 작은 가방을 배에 둘러차고 쿠션감 좋은 운동화를 찾아 신고서야 집을 나섰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발바닥에 약한 통증이 느껴진다. 무리하면 남편처럼 대상포진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친다. 지하철역까지 겨우 십오 분, 머릿속에서 몇 번씩 계획을 수정하고 또 수정하느라 단풍잎 떨어지는 것도 못 봤다.     


“체력을 넘어선 운동은 외려 독이 될 수 있는데... 중간쯤 내려 커피랑 케이크나 먹고 올까. 요즘 책 한 권 안 봤는데 김영하 작가 신작이나 사 읽을까.(예전 작품도 안 읽어 놓고서) 누워만 있다가 갑자기 등산을 간다니, 미친 짓 아닌가?"


“그래. 미친 짓 한번  해보자. 떨어져 죽을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날아오른 조나단처럼. 소음과 전자파로 가득 찬 불쌍한 내 뇌에 시원한 자연의 바람을 넣어주자.”          

 


산의 기후는 변화가 극심하다. 해가 들 때와 들지 않을 때의 온도 크고 몇 초 간격으로 햇빛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기 때문에, 소매를 접어 올렸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하게 된다. 아주 천천히 내딛는 초반 탐색전을 끝내고, 이 정도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걸음이 살짝 빨라졌다. 땀도 조금씩 배어 나와 조끼를 아예 벗어 팔에 걸쳐 든다.      



아무 생각 없이 오르기에 집중하다 찜했던 바위를 보고 멈추었다. 이 산의 정상은 여기가 아니지만 내 마음속 정상은 여기다. 사실 여기까지도 올 줄 몰랐다. 신이 나서 바위에 발을 올린 후 사진을 찍었다.     


  

초콜릿을 꺼내 우적우적 씹어 먹고 잠시 땀을 식힌 후 오래 쉬면 내려가기 힘들까 봐 얼른 털고 일어섰다. 몇십 년 동안 지리산을 오르셨던 분이 유 퀴즈에 나와서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많이 힘들고 다친다.’라고 하신 말처럼,  과연 내려가는 길이 더 긴장되어 힘이 많이 실렸다. 얼마 가지 않아 무릎과 종아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더욱 조심하며 처음에는 한 발 내리고 다음 발을 그 옆에 나란히 두었다 다시 떼기를 반복했지만 곧 요령이 생기면서 바쁘게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듯 한쪽 발에 한 칸씩 성큼성큼 내려갔다. 약하게나마 리듬을 타며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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