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씬 맞은 듯, 그야말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파 밤새 잠을 설쳤다. 한쪽 다리 무게만 족히 육십 키로는 나가는 것 같지만, 일단은 나서기로 했다. 몇 시간 등산도 버거우면 여행은 어찌 다니나. 열 번의 등산을 마치면 여행 가기로 나와 약속을 했다. 또 약속하는 걸 보니, 나는 아직 나를 신뢰한다.
떨어지는 낙엽을 잡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었다. 이뤄서 뭘 하겠냐마는 기어이 손을 뻗어본다. 바람에비처럼 쏟아지는낙엽도 느린 내 손엔여간해선 잡히지 않는다. 사람이 있으면 가만히 서 있다가 지나가면 바로겅중겅중뛰어다니며 낙엽을 좇았다. 꽤 재미있다.
내리막이 더 어렵다곤 해도여전히 오르막은턱까지 숨이차오른다. 앞에 가던 무리의 담소가 크기도 했고, 지체되는 것 같아 서둘러 앞질렀다. 앞지르고헐떡거리는 내 주위를하얀 나비가 살랑이며 한 바퀴 돌고 멀어져 간다.
얼마 전 읽은 ‘애벌레의 꿈’이라는그림책에선, 길을 떠난 애벌레가 높이 솟은 애벌레 탑을 발견하고 정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한다. 다들 저 위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먼저 가려고 서로 짓밟고 밀며맹목적으로 오르기만 한다.
‘정상에 뭐가 있지? 뭔진 모르지만 엄청난 것이 있을 거야. 아니면 이렇게 다들 죽을힘을 다해 올라갈 리가 없잖아. 꼭대기에 올라가면 아름다운 나비가 될 수 있는 걸까?’
정상에 올라간 애벌레는 결국 저 아래로 떨어져 죽을 뿐이다. 남들처럼 하길 포기하고 혼자묵묵히누에고치를 만드는 애벌레만이 나비가 될 수 있다.
그래도 떨어지기 직전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은 황홀하지 않았을까.
“내가 어떻게 슬럼프를 벗어났는지는 내가 알지. 내가 어떻게 좌절을 딛고 변화를 이뤄내는지는 내가 알지. 나밖에 모르지. 하루 종일 유튜브를 쳐다본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지. 이제 그만 무기력하자. 이제 내 삶을 살자. 나의 이야기를 쓰자.”
하산하며많이 힘들었는지나도 모르게 계속 중얼거렸다. 사뭇 비장하지만내 기준,무한도전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