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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숲 Nov 17. 2022

등산_둘째 날


흠씬 맞은 듯, 그야말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파 밤새 잠을 설쳤다. 한쪽 다리 무게만 족히 육십 키로는 나가는 것 같지만, 일단은 나서기로 했다. 몇 시간 등산도 버거우면 여행은 어찌 다니나. 열 번의 등산을 마치면 여행 기로 나와 약속을 했다. 또 약속하는 걸 보니, 나는 아직 나를 신뢰한다.


떨어지는 낙엽을 잡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었다. 이뤄서 뭘 하겠냐마는 기어이 손을  뻗어본다. 바람에 비처럼 쏟아지는 낙엽도 느린  손엔 여간해선 잡히지 않는다. 사람이 있으면 가만히 있다가 지나가면 바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낙엽을 다. 꽤 재미있다.


내리막이 어렵다곤 해도 여전히 오르막은 턱까지 숨이 차오른다. 앞에 가던 무리의 담소가 크기도 했고, 지체되는 것 같아 서둘러 앞질렀다. 앞지르고 헐떡거리는 내 주위를 하얀 나비가 살랑이며 한 바퀴 돌고 멀어져 간다.  


얼마 전 읽은 ‘애벌레의 꿈’이라는 그림책에선, 길을 떠난 애벌레가 높이 솟은 애벌레 탑을 발견하고 정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한다. 다들 저 위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먼저 가려고 서로 짓밟고 밀며 맹목적으로 오르기만 한다.


‘정상에 뭐가 있지? 뭔진 모르지만 엄청난 것이 있을 거야. 아니면 이렇게 다들 죽을힘을 다해 올라갈 리가 없잖아. 꼭대기에 올라가면 아름다운 나비가 될 수 있는 걸까?’  


정상에 올라간 애벌레는 결국 저 아래로  떨어져 죽을 뿐이다. 남들처럼 하길 포기하고 혼자 묵묵 누에고치를 만드는 애벌레만이 나비가 될 수 있다.  

그래도 떨어지기 직전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은 황홀하지 않았을까.

           


 “내가 어떻게 슬럼프를 벗어났는지는 내가 알지. 내가 어떻게 좌절을 딛고 변화를 이뤄내는지는 내가 알지. 나밖에 모르지. 하루 종일 유튜브를 쳐다본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지. 이제 그만 무기력하자. 이제 내 삶을 살자. 나의 이야기를 쓰자.”

하산하며 많이 힘들었는지 나도 모르게 계속 중얼거렸다. 사뭇 비장하지만 내 기준, 무한도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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