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천 길을 걷다가 갑자기 푸드득하는 소리가 들렸다. 인기척에 놀란 백로와 오리가 날아올랐다. 백로는 높이 올라가 마치 자연의 영역을 벗어나 인간의 영역으로 건너가듯 시야에서 사라졌다. 오리는 십여 미터쯤 날다가 곧 착지했다.
포근한 날씨에 오리가 제법 많이 나와 있다. 하천을 따라 유유히 흘러가다가 먹이를 감지하면 물속에 머리를 콕 박는다. 꼭 내가 머리를 수그리고 핸드폰 볼 때와 비슷한 모양새다. 먹잇감을 향해 박력 있게 부리를 박았지만, 발버둥 치다 소득 없이 힘겹게 고개를 든다. 힘이 많이 빠졌을 텐데도 다시 쉬지 않고 물장구를 친다.
또 다른 백로는 날아올라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하천에서 가장 높은 소나무 꼭대기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초록 소나무에 내려앉은 하얀 백로가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답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오리는 또 얼마나 부러웠을까.
우아하게 날아올라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싶었다. 긴 다리로 맵시 있게 걷고, 어디든 갈 수 있는 큰 날개를 지닌 백로이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짧은 다리로 쉼 없이 뒤뚱거리며 걸었다.
여상을 졸업하고 취업한 반도체 회사에서 처음으로 지각한 날이었다. 아침에 퇴근했다가 낮에 자고 다시 그날 밤 열 시에 들어가는 스케줄이었다. 안대를 찼는데도 봄날의 햇빛이 눈부셔 계속 뒤척였다. 라인에서 온 전화에 간신히 일으킨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몇 년 동안 교대 근무를 하면서 나도 모르는 새 체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정신없이 기숙사에서 나와 라인을 향해 뛰어 가는데, 저 멀리 까만 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눈에 들어왔다.
‘물기 어린 듯한 별이 참 아름답구나. 아, 오늘이 토요일이었지.’
그런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문득, 십 년 후에도 이 길을 걸을 내 모습이 떠올라 답답해졌다.
퇴근하는 길로 수능 문제집을 사서 일 끝나면 지하의 독서실로 향했다. 공부라고는 생전 해본 적 없으니 아무리 들여다봐도 문제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비중이 높은 언어영역만 내리 풀고 해설집 읽기를 반복하니, 120점 만점에 100점 가까이 나왔다. 퇴사 후 야간 대학에 진학했고 다시 사범대로 편입했다.
오리가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날아오른 건 백로를 흉내 내려한 것이었을까. 나를 벗고,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버둥거렸다.
학교 선생님이 되길 원했다. 방학을 누리고 교정을 거닐고 선생님 소릴 듣고 싶었다. 알맹이 빠진 꿈은 동력을 상실했다. 오리의 각인처럼, 시 한 편을 봐도 첫사랑을 떠올리며 눈물바람이니 공부가 될 리 없었다. 번번이 시험에 떨어졌고 결국 검정고시 학원에 취업했다. 그래도 차려입고 단상에 서면, 마음속 허기가 조금은 채워지는 것 같았다.
생산직, 대학, 임용고시, 학원, 콜센터를 거쳐 직업상담사로 일했다. 직업훈련교사와 강사에 도전한 것도 뭔가 있어 보이고 주목받는 직업이라는 점에 끌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허세를 뒤집어쓰고 평생을 증명하기 위해 산 것 같다.
이곳은 양 끝이 막혀 흐르지 않는 하천이다. 갇힌 물은 여름이 되면 녹조로 혼탁해지고 오염된다. 집오리는 잘 날지 못하지만 야생오리는 수백에서 수천 킬로미터까지도 날 수 있다고 한다. 백로가 아니어도 괜찮다. 나는 정글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은 야생오리다. 언젠가 고인 물을 박차고 날아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