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 밴드 아프리카로 2006년 데뷔했습니다. 본명은 윤재선입니다. 밴드 아프리카에서는 보컬로 3장의 음반을 발매했습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전통 하드락을 오래 해 온 경력이 말해주듯 시원한 사이다 같은 고음이 예술이죠.
원래 성악도였다고 하는데요. 소프라노를 했어도 괜찮았을 성량과 실력이죠? 성악가를 준비하다가 록 밴드 공연을 보러 가서 한눈에 반한 후 록으로 전향했다고 전해집니다. 남들은 힘겹게 부르는 노래를 너무도 쉽게 불러내는 그녀를 보면 타고났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을 정도죠.
JTBC 싱어게인 2 무명가수 전에 출연해 톱 3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후 솔로가수로 활동 중이죠. 2022년에는 '사랑은 결국 거짓말'로 첫 솔로음원을 발표고 올해 5월에도 부활의 곡을 리메이크한 '미소'를 선보였습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는데요. 이유가 사람 마음을 잘 알아야 노래를 잘 부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네요. 뼛속까지 가수가 되기 위해 태어난 그녀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독실한 불교 신자에여서 불교 방송에 고정 출연 중입니다.
예전에 머라이어케리가 돌고래 소리로 인간계 목소리의 끝판왕을 담당했는데, 윤성 씨는 진성 고음으로 목소리에서 강한 힘이 느껴지죠. 거의 국내 여자 가수 중에는 이 분야에서 그녀를 따라올 자가 없어 보입니다. 그만큼 유니크하죠. 이런 분을 언더그라운드에 20년 가까이 놔뒀더니 우리 같이 반성합시다. 하하하.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아침 이슬'입니다. 싱그럽죠? 그런데 노래 가사는 이런 이미지와는 정반대입니다. 비장하다고 할까요? 이 노래는 작사작곡가인 김민기 씨가 처음 불렀고 그다음에 양희은 씨가 리메이크했죠. 김민기 씨는 피아노 반주로, 양희은 씨는 기타 반주가 차이점이랄까요. 이 노래가 만들어진 시점이 바로 박정희 군사독재시절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민중가요로서 억압과 탄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때 검열로 금지곡이 되기도 했죠.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이 첫 가사입니다. 여기서는 아침이슬의 탄생과정이 나와 있는데요. 긴 밤 + 풀잎에 맺힘 + 진주보다도 더 고움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진정한 아침이슬이 되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긴 밤은 예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시대적인 밤을 상징하고요. 풀잎에 맺힘은 여기저기 민초들의 마음에 닿는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진주는 돈을 주면 살 수 있는 고정화된 대상이지만 반대로 아침이슬은 긴긴밤을 보낸 풀잎에게 나타나는 동시에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우리의 정신이나 희망 따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부분입니다. 피박과 고난이 시간이 괴롭혀도 그런 정신과 희망을 꺾을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듯합니다. 긴 어둠도 끝이 있고 아침이슬을 만들듯이 그것을 보고 느끼기 위한 열망으로 동산에 올라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이겠죠.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태양은 묘지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에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부분입니다. 비장하죠? 원래 김민기 씨가 묘지에서 자고 난 후 해가 뜨는 모습을 보면서 가사를 이렇게 뽑았다고 하는데요. 쓰는 사람이 그렇게 썼더라도 민중의 열망은 민주화오 바꾼 목숨들로 떠오르고라고 읽히는 걸 어쩝니까? 한낮에 찌는 더위도 비슷한 시대적 배경을 말하는 것 같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친 광야로 간다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그동안 서러웠던 감정마저도 버리고 간다는 부분이 눈에 들어오는데요. 아마도 과거를 딛고 미래로 향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이런 시절의 감상을 100% 이해할 순 없지만 우리와 비슷한 민주화의 길을 걷고 있는 나라에서 이런 노래들을 각색해서 부른다고 하니 이 노래에서 느껴지는 정서는 세대와 만국 공통이 아닐까 싶네요.
음. 오늘은 가사 중에 '거친 광야'에 대해 썰을 좀 풀어봐야겠네요. 광야의 사전적 의미는 '텅 비고 아득히 넓은 들판'입니다. 여러분들은 광야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거칠다는 형용사와 어울리죠. 뭔가 사람의 발길이 드물었을 것 같고 그래서 길도 따로 있을 것 같지 않고요. 바다로 치면 망망대해 한가운데가 생각난다고 할까요? 누군들 그런 장소에 서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화자는 거친 광야로 나간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뭘 의미하는 것일까요? 거친 광야에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없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바로 '자유'가 아닐까 하는데요. 생명을 담보할 수도 없고 생활에 친화적이지도 않은 환경이지만 인간의 본래 가치인 자유만큼은 주어지는 공간이죠. 다른 것을 다 버리고 바꾸더라도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이 바로 '자유'라고 말하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편안, 안정 같은 단어는 사실 자유의 박탈을 뜻하기도 합니다. 주어진 조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이런 감정을 느낄 수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거기에 반기를 드는 순간 편안과 안정은 깨치고 고난과 역경이 밀려옵니다. 이때 우린 주변에서 '가만히만 있으면 중간이나 간다' 든가 '모난 놈이 돌 맞는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진정으로 자유를 찾는 사람들은 늘 수세에 몰리기 마련입니다.
이런 책 제목이 있습니다. '인간은 방황하는 한 성장한다'입니다.편안과 안정의 메커니즘에 빠지는 순간 우리의 성장은 거기서 그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앎을 추구하는 것도 그 앎을 통해 기존의 사고를 흔들어 버리며 생각의 방황을 거듭하려는 것도 결국은 생각의 광야를 경험하는 일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거친 광야로 나아가면 본인의 실력이 제대로 까발려질 겁니다. 분업화라는 이름으로 잘게 쪼개진 사회에서 살다가 A부터 Z까지를 스스로 하게 되면 자신의 실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죠. 그런 과정을 수없이 겪은 자만이 진정한 자유를 품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여러분들의 광야는 어디에 있나요? 여러분들은 거친 광야로 나가려는 마음을 내신 적은 있나요? 거친 광야에서 생존하기 위해 지금 무엇을 준비하시고 있나요? 광야를 품을 만큼 자유로운 삶을 지향하고 있나요? 물리적인 장소가 아닌 정신의 장소로 광야를 추구하는 삶이라야겠죠. 그 속에서 한껏 함께 성장해 보는 기쁨을 만끽하길 바랍니다.
오늘은 이육사 님의 <광야>라는 시로 마무리해볼까 합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리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긴강물이 비로 길을 였었다/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가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참 좋죠?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요즘 안타까운 소식이 많이 들리네요. 얼마 전에 현철 형님이 돌아가시더니 이번엔 이 노래를 작사작곡한 김민기 님이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음악계의 큰 별들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쉬워서 이런 식으로라 그분들의 노래를 <가사실종사건>에서 다뤄볼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게 인간의 도리이자 사자에 대한 마지막 예의라고 생각해서요. 그래서 오늘은 이 노래를 선곡하게 되었네요. 부디 훌훌 털고 좋은 곳으로 가시길.....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