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작곡 김형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박용하'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huiib678 s7 I? si=2 g63 o42988 doM1 ZL
언젠가 널 다시 만날 그날이 오면
너를 내 품에 안고 말할 거야
너만이 내가 살아온 이유였다고
너 없인 나도 없다고
언젠가 힘든 이 길이
끝이 나는 날
그대 곁에서 내가 눈 감는 날
기억해 나의 사랑은
네가 마지막이었단 걸
처음 그날처럼
- 박용하의 <처음 그날처럼> 가사 중 -
박용하는 2003년 데뷔했습니다. 가수이자 배우였는데요. 배우로는 1994년 데뷔했습니다. 대학교에서 연기를 공부했고요. KBS 최고 주말 예능 프로그램 <출발 드림팀>에서 에이스였을 정도로 운동도 꽤 잘했죠. 오늘 소개할 노래는 드라마 올인의 OST로 삽입된 곡입니다. 그의 가수 데뷔곡이었습니다.
2002년 드라마 <겨울연가>에 출연해 배우 배용준 씨와 함께 한류 스타가 되기도 했고요. 그 덕분인지 한국 가수 최초로 2005년 일본 디스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했고 2005년부터 2008년까지 4년 연속 일본 골든디스크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2006년에는 한국 가수 최초로 하와이에서 단독 공연을 했다고도 하네요. 쩝
2010년 일본에서 정규 5집을 발매합니다. 하지만 변고가 생기죠. 콘서트 투어를 앞두고 돌연 사망합니다. 도쿄 국제포럼에서 열린 추모 헌화식에는 무려 1만 4천여 명의 추모객이 모일 정도로 그의 인기를 드러냈죠. 그리고 2014년 일본 데뷔 10주년 기념 앨범으로 떠난 그에 대한 아쉬움을 대신해야 했습니다.
라디오 DJ를 맡기도 했고 카레이서로도 활동했습니다. 자살을 택한 것으로 보이는데, 겉으로 보는 연예인의 모습 뒤에 숨겨진 그 속내를 우린 알 수 없죠. 가수와 배우로 둘 다 성공하기가 힘든데, 그 어려운 벽을 넘고서 이리 허망하게 생을 마감한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처음 그날처럼>입니다. 네. 누구에나 처음이란 건 있죠. 때 묻지 않는 순수함. 변치 않을 것 같은 마음 뭐 이런 수식어들을 달고 다닙니다. 술 이름에도 '처음처럼'이 있는데요. 그만큼 처음은 두렵기도 하지만 동시에 설렘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가야 한다고 어쩔 수 없다고/ 너의 손잡은 채/ 나는 울고만 있었지/ 언젠가는 꼭 돌아올 거라고/ 그땐 우린 서로/ 웃을 수 있을 거라고/ 긴 기다림은 내겐 사랑을 주지만/ 너에겐 아픔만 남긴 것 같아/ 이런 날 용서해 바보 같은 날' 부분입니다. 마치 화자가 군입대를 앞두고 있거나 전쟁에 나가는 사람인 듯합니다.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오랜 기간 멀리 다녀와야 하는 상황인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군요.
'눈을 감으면 잊혀 버릴까/ 슬픈 밤에도 쉽게 잠들 수 없었지/ 꿈에서라도 널 보게 된다면/ 눈물 흐를까 봐 눈을 뜰 수가 없었어/ 긴 기다림은 내겐 사랑을 주지만/ 너에겐 아픔만 남긴 것 같아/ 이런 날 용서해 바보 같은 날' 부분입니다. 화자는 상대를 눈에서 안 내려놓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만큼 헤어지지 싫다는 의미이겠죠. 현실에서 본다면 눈을 감지 않을 거고 꿈에서 본다면 눈을 띄지 않을 거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언젠가 널 다시 만날 그날이 오면/ 너를 내 품에 안고 말할 거야/ 너만이 내가 살아온 이유였다고/ 너 없인 나도 없다고/ 언젠가 힘든 이 길이/ 끝이 나는 날/ 그대 곁에서 내가 눈 감는 날/ 기억해 나의 사랑은/ 니가 마지막이었단 걸/ 처음 그날처럼' 부분입니다.
후일을 기약합니다. 상대는 화자의 첫사랑이자 끝사랑인 것 같군요. 허허. 왠지 못 돌아올 것 같은 싸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요? 죽으러 가는 사람 느낌이네요. 이론. 마치 박용하라는 가수가 팬들의 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을 예고라고 한 느낌이네요. 가수는 노래 따라간다는 말처럼요.
음. 오늘은 가사 중 '긴 기다림'에 착안해서 '기다림의 미학 2'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라고 표현한 것은 제 기억에 이 주제로 언젠가 한 번 쓴 일이 기억이 있어서입니다. 가사에 보면 '긴 기다림은 내겐 사랑을 주지만/ 너에겐 아픔만 남긴 것 같아' 부분이 나옵니다. 어쩔 수 없어 떠나는 사람보다 기다리는 사람이 더 힘든 법이죠.
참을 인자 세 개면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말이 있죠. 기다림은 인내의 상징입니다. 그중에서도 기약 없는 기다림은 으뜸이죠. 사극 드라마에 보면 흰 소복을 입고 뱃머리나 바위 위에서 한 여인이 언제 오시려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먼 곳을 응시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요. 딱 기약 없는 기다림의 정석되겠습니다.
예전에 친구를 만날 때를 생각해 보죠. 집 전화 외는 다른 통신 수단이 없을 때 말이죠. 몇 시에 만나기로 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상대가 나타나지 않죠. 그럼 집으로 전화를 걸어 봅니다. 나간 지 한참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 걱정을 하곤 했죠. 심한 경우는 몇 시간도 기다리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기다림이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물론 언제나 어디냐고 물으면 '다 왔어'라는 말을 버릇처럼 내뱉은 한국인의 못된 습성도 한 몫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약속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약속 장소에 나온 시간이 더 중요한 듯합니다. 먼저 도착한 사람은 약속 시간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아니라 이내 핸드폰을 들고 '어디야? 빨리 와'라는 말을 연발하죠. 이게 무슨 경우인가요? 하하하.
그나마 이런 기다림은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수준입니다. 인생에서 불행이 방문했을 때를 생각해 보죠. 잠깐 다녀가는 불행이 아니라 상당 기간 머무르며 당최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 불행 말이죠. 이러면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죠. 언제 갈 지도 기약이 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지내야 하는 까닭입니다.
사실 그런 불행은 평생 당사자를 떠나지 않습니다. 평생 함께 하는 경우도 있죠. 그래서 당사자의 마음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잘 데리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기 전까진 불행은 고통의 옷을 입고 한결같이 당사자를 괴롭힙니다. 본업에 충실한 것이죠. 그러다 자포자기든 적응이든 뭐든 되면 불행이라는 놈이 옷을 바꿔 입습니다. 고약한 것.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포인트는 우리에게 이런 기약 없는 기다림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 삶도 기약 없는 기다림의 연속이죠. 그런데 말이죠. 우리가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이 인간에게 '기다리는 일'은 반려견에게 간식을 줄 때 하는 '기다려'라는 말과는 분명 다른 차원입니다.
그냥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뭘 하면서 기다려야 하는 것이죠. 사뮤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소설이 생각나는데요. 아시는 바대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방랑자가 고도라는 인물이 나타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스토리입니다.
이에 대한 해석은 다 다르겠지만 제가 눈여겨보는 부분은 고도가 누군인지, 언제 올지 뭐 이런 것보다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 그들이 무엇을 했는 지입니다. 수많은 인간 감정을 드러내며 다소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그려지죠. 무작정 기다리는 것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요?
기약 없는 기다림이 그냥 기다림으로 끝날 수도 있다고 가정해 보면 그 시간을 그냥 기다리는 일에만 쓰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일상을 돌보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그러면서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도록 끝내 안 와도 괜찮다는 마음을 견지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기다림은 수동적인 행동이라고 이해하기 쉬우나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능동적인 자세를 취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래야 우리 앞에 나타난 수많은 기약 없는 기다림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테니까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올 지 안 올지 모르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은 참 힘든 일이죠. 대부분 제 뿔에 지쳐서 나가 떨어지기 일쑤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시작할 때 그게 될지 안 될지 가능성을 묻는 것도 비슷하죠. 그런데 인생에서 그런 답 없는 문제에 도전하고 이를 껴안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도 없죠.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