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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연결 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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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우 Sep 04. 2022

[소설] 연결 21

파멸

발칵 뒤집힌 대한민국을 외국에서 바라보는 기분은 묘했다. 마치 내가 피운 불에 모든 것들이 타서 없어지는 것을 멀리서 보는 것 같았다. 임상혁과 나는 잠잠해질 때까지 상하이에 머물기로 했다. 한국으로 돌아갈 때 겪을 언론과 대중의 시선과 횡포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샹그리아 호텔에서 당한 일 때문에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혜정도 돌볼 겸 당분간 혜정의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 혜정의 집에서 멀지 않은 호텔에서 묵고 있는 임상혁과 회사에서 일할 때보다 훨씬 자주 만나서 대화할 기회가 많아졌다.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뭔데요?”

“샹그리아 호텔에서 혜정이와 내가 감금되었을 때 공안들에게 뭐라고 신고했어요?”

“성매매 현장이라고….”

“아…. 그렇군요. 공안들이 나와 혜정이를 바라보던 표정이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미안해요. 성매매 현장이라고 해야 공안들이 빨리 움직일 것 같았어요.”

중국 정부가 대대적인 성매매 단속을 한다는 기사를 떠올리며 임상혁의 순간적인 기지에 감탄했지만 상하이의 외국인 매춘녀가 된 기분은 좋을 리 없었다.

“지은 씨에게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어요. “

임상혁이 어색한 분위기를 전환시키려고 한다고 생각한 나는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그는 한참 동안 다음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유비쿼터스는 나와 찬혁이가 만들었지만 인애 때문에 만들어진 회사예요. 그래서 그 사람들을 더더욱 용서할 수 없어요. 인애를 처음 죽인 것은 나고, 두 번째로 죽인 것은 그들이에요.”

인애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임상혁이 그녀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는 순간, 임상혁은 스마트폰의 사진 앱을 열었다. 사진 속의  임상혁은 인애와 다정하게 키스를 하고 있었다. 팔의 각도를 봐서 임상혁이 폰을 들고 셀카를 찍은 것으로 보였다. 다른 사진에서는 임상혁과 인애가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활짝 웃고 있었다. 임상혁은 환하게 웃고 있었고 인애는 이불로 상반신을 가리고 있었다.

“인애는 우울증이 아니라 나 때문에 자살한 거예요.”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임상혁의 얼굴만 멍하게 바라보았다. 지금 이 남자는 자신의 여동생을 사랑했었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여동생이 자살을 했다는 말을 하고 있는 듯했지만 나는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찬영이가 인애를 좋아했던 것을 내가 안 것도,  인애와 나의 관계를 찬영이가 안 것도 얼마 전이에요.”

박찬영 이사가 꽃을 한 아름 안고 납골묘에 붙은 인애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나와 유비쿼터스를 파멸시키기로 결심한 게. 찬영이는 회사의 기밀을 대형그룹에게 넘기고 있었어요.”

“그럼 박찬영 이사님이 샌프란시스코에 간 것도….”

“맞아요. 이재영이 대형그룹의 자회사인 DH테크놀로지의 대표이사로 찬영이를 스카우트했어요. 하지만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죠.”

나는 이 두 남자가 한 여자에 대해서 느꼈을 사랑과 서로에게 느꼈을 분노를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이들은 어떻게 그동안의 시간을 견뎌내며 살아왔을까? 아니 어떻게 살아간다는 것이 가능했을까?

그때 임상혁의 스마트 폰에서 대형그룹 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청 프로그램을 미처 지우지 않은 직원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이재영으로부터 상하이 사무실을 깨끗이 정리하라는 명령을 받고 사무실로 이동하고 있었다. 증거를 인멸하려는 의도였다. 미처 그 생각까지 못하고 있었다. 나와 임상혁은 서둘러서 택시를 잡아 탔다. 택시 안에서 한국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유튜브 앱을 켰는데 방송사의 실시간 속보 알람이 떴다.

“대형그룹 관련 또 다른 소식입니다. 실리콘 밸리에 위치해 있는 대형그룹의 자회사 DH테크놀로지의 대표이사 박찬영 씨가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박찬영 씨는 유비쿼터스에서 기술이사로 재직하다가 대형그룹의 이재영 이사와 공모하여 유비쿼터스를 불법 인수한 협의를 받고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박 씨의 필체로 쓰인 유서가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은 대형그룹의 범죄에 협조한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자세한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임상혁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임상혁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애써 외면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사무실에는 사무실 집기와 의자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었고 직원들이 컴퓨터와 문서를 옮기고 있었다. 샹그리아 호텔에서 혜정과 나를 감금했던 떡대 둘의 모습도 보였다.

“어이, 이게 누구신가?”

나와 임상혁을 알아본 신성일이 다가왔다.

“대형그룹의 실세 신전무님을 다시 만나 뵙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그런데 이제 도망자 신세가 되셨군요.”

사무실 주위를 둘러보면서 임상혁이 말했다. 오는 길에 공안에 신고를 한 임상혁은 공안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벌 생각이었다. 공안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급한 대로 다시 성매매 현장이라고 둘러댔다.

 “나는 도망자 신세이지만 당신은 이제 죽게 생겼는데……어떡하나?”

 신성일이 호텔방을 지키던 두 떡대에게 눈짓을 하자 그들이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너는 모르겠지.”

 “당신도 내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모르겠죠.”

 “그래, 너도 무언가 꿈을 꾸었겠지. 내 꿈과는 많이 달랐겠지만.”

 두 떡대 중 키가 작은 떡대의 뒷 춤에서 번쩍이는 무언가가 나오더니 임상혁의 복부에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억!” 상혁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키가 작은 떡대는 칼을 빼고 다시 한번 상혁의 복부에 반짝이는 칼을 후벼 넣었다. 이번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상혁은 차가운 사무실 바닥에 쓰러졌다. 꿈속에서 수도 없이 본 장면이 내 눈앞에서 재현되었다. 임상혁은 이번에도 나를 바라보았지만 말을 하지 못했다. 꿈속에서의 시간은 길게만 느껴졌는데 현실에서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멍하게 서 있는데 공안들이 사무실에 들이닥쳤다. 나는 어눌한 중국어로 이 사람들은 한국에서 기소된 사람들이니 당장 체포해야 한다고 소리 질렀다. 피를 흘리면 쓰러져 있는 임상혁을 본 공안들이 권총을 꺼내서 두 떡대와 신성일을 비롯한 직원들을 제압하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임상혁을 향해서 뛰기 시작했다.

‘안돼, 죽지 마! 당신은 죽으면 안 되는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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