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리 키우기와 번식 / 꽈리 꽃의 꽃말과 꽈리의 추억

가야의 꽃 이야기 /

by 가야

꽃 중에는 어린 시절을 함께 한 꽃이 있다.


그런 꽃들을 만날 때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는 미소가 떠오르고


가물거리는 추억은 이내 어린 시절의 나를 소환한다.


거기 예닐곱 살 먹은 어린 내가 있다.


단발머리에 색동저고리 차림이다.


역시 단발머리를 한 눈이 컸던(지금은 그렇지 않다) 언니가 친구들과 웃으며 마루 끝에 앉아 까르르 웃으며 바늘로 조심스럽게 꽈리 속을 파내고 있다.


주홍빛 유리구슬처럼 빛나는 그 열매 옆으로 꽈리의 겉껍질이 어지럽게 흩어져있다.


꽈르르~

꽈르르~

꽥~


마치 개구리가 우는 듯한 꽈리 소리를 내는 언니들을 부러움에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나!


나는 언니의 치마를 잡고 몸을 흔들며 꽈리를 달라며 조르고 있다.


꽈르르~


입안 가득히 두 볼이 빵빵해지도록 꽈리에 바람을 넣었던 언니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고무신을 끌고 장독대 옆으로 가 잘 익은 꽈리를 하나 뚝 딴다. 그 뒤를 따르던 내가 가을 햇살만큼 환하게 언니를 보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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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내 꽈리를 딴 것이다.


나도 언니들처럼,

아니 언니들보다 더 큰 소리로 꽈리를 불어야지!


이런 상상을 하며 마루 끝에 앉아 겉껍질을 벗긴 꽈리를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받쳐 들고 바늘로 속을 파내는 언니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 그러나 꽈리의 속을 파내는 일은 쉽지 않다. 꽈리 꼭지가 붙었던 자리가 워낙 작아 꽈리 씨와 대가 그곳으로 나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입구보다 속 씨앗 대가 몇 배 컸기 때문에....


언니들은 그동안의 축적된 경험으로 꽈리 속 씨앗을 손으로 주물러 씨앗을 일일이 분리한 다음 조심스럽게 그 좁은 입구로 그것들을 빼내는 기술을 터득했지만 그렇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입구가 조금이라도 손상이 되거나 찢어지면 꽈리를 불 수가 없다. 바람이 찢어진 곳으로 새면서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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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조심스러운 손길에 딱딱하던 꽈리 열매가 물렁해지기 시작했고,


조금씩 씨앗들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속대만 나오면 된다.


그러나 어쩌랴!


꽈리의 속대는 열매 속에서 나오기를 거부하며 언니와 지루한 실랑이를 거듭하더니 마지못해 끌려 나오면서 그 좁은 입구 한 귀퉁이를 냅다 차고 만 것이다. 꽈리가 찢어진 것이다.


언니가 동작을 멈추고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앞에 서서 이제나저제나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던 나는 언니의 큰 눈동자와 눈을 맞추는 순간,


왕~ 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알았어, 알았어. 울지 마! 내가 다시 해줄 계. 이번에는 아주 조심해서 잘 만들어줄게. 응? 뚝!"


나는 언니의 말을 믿고 울음을 뚝 그친다.


그러나 언니의 꽈리 만들기는 실패를 거듭했고, 그 책임이 모두 언니에게 있는 것처럼 내가 마당에 두 다리를 뻗고 앉아 큰 소리로 울어대자 엄마한테 혼날 것을 염려한 언니가 자신의 입속 꽈리를 내게 꺼내 주며 말했다.


"자, 그럼 내 꽈리 줄 테니 그만 울어!"


나는 배시시 웃으며 일어나 치마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내고 언니의 손에 든 꽈리를 받아 든다. 그리고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불어보려고 애쓰지만 꽈리는 주인을 알아보는 듯 전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이 병신! 꽈리를 입에 물고 바람을 가득 넣어 그리고 입술로 물고 후 불어!"


언니의 가르침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두 볼 빵빵하게 바람을 넣는다.


언니가 시키는 대로 후~ 불어 본다.


그러나 들리는 것은 픽~ 하는 바람이 새는 소리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언니의 친구들이 일시에 까르르 웃었다.


"우 씨!"


물고 있던 꽈리를 마당에 내동댕이치고 꽈리를 못 부는 것이 언니들 탓인 양 언니들을 흘겨보며 방으로 들어가 울고 만다.


그 꽈리!


그 후에도 나는 여전히 꽈리를 불지 못했다.


초등학교 1학년 말, 전주로 이사를 하였고 꽈리와의 짧은 인연도 그렇게 마감되는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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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차


작년에 어렵게 꽈리 한 포기를 화단에 심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꽈리 모종을 옮겨 심은 탓인지 시름시름 죽어가길래 나는 낮에는 햇빛으로부터 보호를 위해 큰 화분을 씌워주고 아침저녁으로 물 주기도 거르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화단에 자리를 잡은 꽈리!


심한 몸살을 한 탓으로 작년에는 꽈리를 수확하지 못했다.


그리고 올해 지난해와 달리 꽈리가 화단 여기저기에 보인다. 한 해가 지나는 사이 번식을 많이 한 것이다.


오호,


꽈리가 이렇게나 번식력이 좋다는 말이지.


나는 가을에 주렁주렁 예쁜 꽈리 열매를 상상하며 행복했었다.


문제는 꽈리가 자라기에 화단이 너무 좁다는 거였다.


꽈리 옆에는 백합이 있다. 그런데 이 백합과 꽈리가 영역 다툼을 시작한 것이다.


누가 이겼을까?


결과는 둘 다 패배자였다. 오거스트 백합 다섯 구 중에 꽈리 때문에 한 구만 꽃을 피웠다. 그것도 아주 약하게, 그렇다면 꽈리는 어땠을까? 꽈리 역시 백합과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욕구가 얼마나 강했던지 키가 자그마치 내 가슴에 닿을 만큼 커,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쓰러지기 일쑤였다.


그렇게 두 식물의 의도치 않은 동거는 불협화음으로 끝이 났다. 원인 제공자는 당연히 꽈리였고, 백합은 영문도 모르고 자신의 터전을 뺏긴 셈이다.


나는 또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화단에서 꽈리를 퇴출해야 하는가? 그대로 두고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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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리는 땅속줄기가 길게 뻗어 번식하기 때문에 확장 영역은 생각보다 더 넓다. 7∼8월에 희다 싶은 연한 노란색의 꽃이 피며, 꽃의 꽃받침은 점차 자라 마치 복주머니 같은 모양으로 열매를 감싼다. 빨갛게 익은 열매는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먹어보니 덜 익은 토마토 맛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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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빛과 비슷한 빨갛게 익은 열매를 ‘꽈리’라고 한다. 한방에서 산장(酸漿)이라 부르는 꽈리의 말린 잎과 줄기 열매는 해열 약으로 사용한다. 분포 지는 한국, 일본, 중국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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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리 꽃의 꽃말은 '수줍음, 조용한 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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