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마티스 전설과 꽃말

9월 12일의 꽃

by 가야

9월 12일의 꽃, 클레마티스 – 나는 기다림 속에 피어나는 꽃


나는 클레마티스. 산과 들, 그리고 정원에서 하늘로 뻗어 오르는 덩굴 위에 꽃을 피우는 존재입니다.


몇 해 전, 당신과 큰언니가 성묘를 가던 길, 산비탈 바위와 소나무 뿌리 사이에서 내 흰 얼굴을 마주했지요. 언니는 여든여덟의 나이에도 여전히 소녀처럼 고왔습니다. 꽃을 보는 눈빛은 더욱 반짝였지요.

“저 꽃, 우리 정원에 꼭 데려와야겠다.”


그 말은 마치 나를 향한 청혼 같았습니다. 하지만 내 뿌리는 깊었고, 쉽게 옮겨갈 수 없었습니다. 자연은 나를 그 자리에 머물게 했으니까요. 그 대신, 당신의 정원에는 이미 내 씨앗에서 태어난 또 다른 나의 분신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처음 씨앗을 심었을 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 보였지요. 하지만 씨앗을 건네준 이는 이렇게 말했어요.


“나무 밑에 심어 두고, 그냥 잊어버리세요. 어느 날, 정말 잊었을 무렵, 싹이 날 거예요.”


그 말대로 2년이 흐른 어느 날, 가느다란 네 줄기의 싹이 땅 위로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당신은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나를 맞이했고,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합니다. 기다림의 시간 끝에 마침내 맺어진 만남이었지요.

올해로 나는 다섯 해를 맞이했습니다. 해마다 덩굴을 뻗고, 꽃을 피우며, 당신의 화단 한편을 환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언니의 설레는 눈빛, 당신의 기다림, 그리고 내 인고의 시간—all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나는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나의 이름, 나의 꽃말


사람들은 나를 클레마티스(Clematis)라 부릅니다. 학명은 Clematis spp.,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지요. 유럽과 아시아 온대 지방이 내 고향이지만, 한국 산과 들에도 나의 친척들이 많습니다. 특히 당신이 산에서 본 그 흰꽃은 으아리(Clematis terniflora var. mandshurica), 우리 토종 클레마티스랍니다.


내 이름 ‘으아리’는, 숲 속에서 내 덩굴에 걸려 놀라 사람들이 “으악!” 하고 외쳤다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전해져요. 확실한 문헌은 없지만, 민간의 해석 속에 깃든 옛사람들의 감각이 참 흥미롭지요.

으름

나와 닮은 이름을 가진 또 하나의 덩굴이 있습니다. 바로 으름덩굴(Akebia quinata)이지요. 봄이면 자줏빛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보랏빛 열매가 스스로 갈라지며 속살을 드러냅니다. 그때 “으르르~” 하는 소리에서 으름이라는 이름이 나왔다는 설도 있답니다.


으아리와 으름덩굴, 이름은 다르지만 둘 다 덩굴처럼 얽히며 숲을 감싸고, 질긴 줄기를 내어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쓰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름 하나에도 자연과 사람이 맺어온 긴 역사가 숨어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지요.

나는 “정신적 아름다움(Mental beauty)”, “고결함(Nobility)”, “여행자의 기쁨(Traveler’s joy)”이라는 꽃말을 지니고 있어요. 기다림 끝에 피어난 내 모습이, 아마도 사람들의 마음에 그런 상징으로 다가갔을 것입니다.


나는 기다림의 꽃


당신과 언니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나는, 기다림이 주는 기쁨을 증언하는 꽃입니다. 금세 피고 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뿌리내리고 덩굴을 뻗으며, 마침내 꽃을 피웁니다.


그러니 나를 만나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조급해하지 마세요. 기다림 끝에 피는 꽃은, 더욱 깊은 감동을 안겨줍니다.”


https://youtu.be/hfLqIypOAiU?si=ZUqZsoqqRo_TLRm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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