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꽃 이야기 /
이 꽃을 보면 기품 있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저절로 알 수 있게 된다.
맑고 깨끗하고 꽃잎과 잎의 선까지도 곱고 정갈한 꽃이 바로 부용이다.
연꽃잎과 많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한자로 부용은 목부용 부(芙) 연꽃 용(蓉) 자를 쓰는 것을 보아 나무에 피는 연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부용(芙蓉) 은 이름처럼 꽃이 탐스럽고 커서 어른 손바닥만 한 꽃이 핀다.
꽃도 줄기도 나무와 같은 데 부용은 나무가 아니라 아욱과 에 속하는 낙엽만 관목이다.
이 부용을 처음 본 것은 30여 년 전 성남에 있는 작은 암자에서였다.
당시 성남 신흥동 성당 앞 골목 초입에 아주 작은 암자가 있었다.
성남 신흥동은 철거민들을 위해 설계된 곳이라 대부분의 집 20평으로 집의 구조가 엇비슷했다. 마당이 있을 리 없었고 있다고 해도 아주 좁은 공간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암자는 다른 집에 비해 대지가 넓었고 작은 화단도 있었다.
작은 암자 앞 댓돌에는 흰 고무신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향냄새 그윽한 암자 앞 작은 화단에는 화초와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대부분의 꽃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라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어느 날 신흥시장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가파른 성당 길을 올라 큰언니가 사는 골목길로 막 접어들었다.
골목 초입에 있는 암자 화단에 못 보던 예쁜 꽃이 피어있었다.
내 발걸음은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았던 암자의 작은 화단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그리고 내 키보다 더 큰 나무에 피어있는 분홍 꽃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내 얼굴만 한 분홍 꽃은 뜨거운 햇살을 받아 더욱 아름다웠으며 만약 선녀의 옷이 있다면 이 꽃잎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옆에 해바라기 몇 송이가 겅중거렸지만 해바라기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꽃을 보고 있는 데, 암자의 문이 열리더니 한 스님이 나왔다. 그는 댓돌 위에 늘 정물처럼 놓여있던 흰 고무신을 신고 화단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나는 흠칫 놀라 뒷걸음질 치며 재빨리 대문 밖으로 내려섰다.
"보살님 잠깐만요."
스님의 목소리를 듣고 나는 비로소 안도했다. 비구니 스님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비구니 스님은 무슨 사연이 있는 비련의 여인일 거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호기심 반, 두려움 반 내 눈은 빛났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스님의 눈빛은 더욱 영롱했다.
내 나이 또래쯤 되어 보이는 파리한 피부가 너무나 아름다운 스님이었다.
"이 동네 살지요?"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님이 골목길을 오가며 화단을 유심히 보곤 했던 나를 잘 알고 있는 눈치였다.
"이 꽃 예쁘지요?"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 꽃이 부용화예요. 은사 스님이 대만에서 씨앗 3개를 가지고 오셔서 심었는데 한 개만 났어요."
그렇게 해서 나는 그 꽃 이름을 알 수 있었다. 부용, 꽃은 그날 처음 봤지만 이름은 익히 알고 있는 꽃이었다.
"시간 있으면 차 한 잔 마실래요?"
그렇게 해서 작은 암자 옆 스님의 처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스님이 따러주는 녹차를 마시며 스님의 말을 들었다.
은사 스님을 따라 대만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복학을 했는데 건강이 안 좋아 암자에 잠시 머무는 중이라 스님은 사람 구경을 할 수 없어 너무 외로웠다며 쓸쓸히 웃었다.
"우리 친구 해요. 나는 호연이에요."
그렇게 호연 스님과 나는 친구가 되었다.
부용 때문에 만난 호연 스님은 부용보다 더 맑게 웃으며 말했었다.
"보살님 부용 꽃을 너무 좋아하시니 나중에 씨앗 여물면 받아서 드릴 테니 한 번 심어 보세요."
스님과 차를 마시며 담소하던 아름다운 날은 그리 길지 않았다.
여름이 깊어가고 부용꽃이 질 무렵 스님의 모습이 암자에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양주 보살님에게 물으니 건강이 나빠져 친가로 가셨단다.
나는 부용 씨앗을 얻을 수 없었고 호연 스님 소식도 모른다.
성남 신흥동에서 서울로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많은 세월이 흘렀고
화단을 가꾸면서 부용 씨 5개를 심었다. 5개의 씨앗은 모두 발아를 했고 쑥쑥 자랐다.
첫해에 꽃을 볼 수 있다는 말에 내심 기대를 하면서도 설마설마했는데, 하루가 다르게 자란 부용은 여름이 시작될 무렵 그 커다랗고 예쁜 꽃을 활짝 피웠다.
그 옛날 신흥동 그 암자에서 보았던 그대로 청초하고 아름답다.
부용처럼 청초하던 호연 스님이 그리워진다.
부용[ 芙蓉 ]
부용은 아욱과 에 속하는 낙엽반 관목(落葉半灌木)으로 학명은 Hibiscus mutabilis L으로, 원산지는 중국이다.
부용은 높이가 1∼3m 정도로 큰 편이고 가지에는 성모(星毛)가 있다. 잎은 둥글고 3∼7개로 갈라지며 길이와 너비가 각각 10∼20㎝이다.
꽃은 8~10월에 지름 10∼13cm로 연한 홍색이나 흰색으로 취산상으로 윗부분의 잎겨드랑이에 1개씩 피는 데 부용꽃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이면 시드는 하루살이 꽃이지만 밑쪽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며 계속 꽃을 피운다.
꽃받침은 보통 중앙까지 5개로 갈라지고 선모(腺毛)가 있으며 꽃받침보다 긴 소포(小苞)가 있다.
열매는 삭과(蒴果)로 둥글고 지름 2.5cm 정도로 퍼진 털과 맥이 있다. 종자는 신장형이며 지름 2mm 정도로 뒷면에 흰색의 긴 털이 있으며 10~11월에 익는다. 겨울에 지상부는 죽고 뿌리만 남아 이듬해 봄에 다시 새싹이 나서 자란다. 그 자라는 속도가 대단히 빠르다. 싹이 났다 싶으면 얼마 후 보면 내 키만큼 훌쩍 자라 있다.
꽃이 아름다워 주로 관상용으로 재배하며, 꽃에는 해열·냉혈(冷血)·소종(消腫)의 효능이 있어 폐열 해소(肺熱咳嗽)·백대(白帶)·붕루(崩漏)·토혈·옹종(癰腫)·화상 등의 치료제로 쓰이기도 한다.
자료 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 부용 [芙蓉]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한국학 중앙연구원)
부용화에 관한 전설을 찾아보니 전설은 없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기 전해진다.
순조 때 연천(淵泉) 김이양(金履陽)은 평안 감사로 부임했다.
그때 성천(成川)에 한 기생이 있었다. 그녀는 얼굴이 아름다워 사람들은 그녀를 부용화처럼 아름답다고 하여 '부용'이라고 불렀다.
연천은 가무와 시문에 뛰어난 부용(芙蓉)을 어여삐 여겨 운초(雲楚)라고 부르며 함께 지냈다.
그 후 평안 감사를 마치고 부용(운초)을 데리고 서울로 돌아온 연천은 그녀를 소실로 맞이하여 시로 화답하며 즐겁게 지냈다.
김이양이 늙어 세상을 떠나자, 3년 상을 정성껏 치르고 자신의 정절을 더욱 정갈하게 지켰다. 세월이 흘러 그녀 역시 늙어 죽을 때가 되었다. 그녀는 지인에게 자신이 죽으면 김이양의 무덤 옆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천안 광덕리 김이양의 무덤 옆에 묻어주었다고 한다.
운초는 삼호정 시단(三湖亭詩壇)으로 성품이 우아하고 시문이 뛰어나 당시 명사들과 교유하였고, 특히 김이양과 살면서 남긴 시가 상당수 있다.
자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사대부의 풍류와 사랑, 김이양과 운초 (문화원형 백과 한국 전통문화공간인 정원과 정자, 2006., 문화원형 디지털 콘텐츠)
부용 꽃의 꽃말은 '섬세한 아름다움',
'매혹', '정숙한 여인',
'행운은 반드시 온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