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라디오 DJ 데뷔를 하게 되었다.
사우스햄튼 지역 네트워킹 모임에서 만난 인연 덕분이었다. 라디오 방송국 매니저와 연결해 준다는 말에 반신반의했는데, 감사하게도 매니저와 미팅까지 성사되었다. 미팅 갈 때는 그냥 스튜디오 구경 해보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생각했다.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일이라고 최대한 기대를 감춘 것과 다르게, 너무나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하였다. 언제 한 번 방송 게스트로 출연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간 것인데, "아니야! 마침 케이팝 쇼 진행자 자리가 비어서 찾고 있었어. 그리고 바로 그 적임자는 너로구나!"라고 하셨다.
그 뒤, 첫 녹음도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DJ라는 자리가 생각보다 그렇게 무겁고 어렵지 않았다. 매 방송마다 곡을 선곡한 다음 나의 코멘트로 살을 붙여서 완성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 시간의 방송은 마음껏 내가 좋아하는 한국 가요를 소개하고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스케치북과 같은 공간이 되었다. 지난 DJ는 여자 솔로, 남자 솔로, 여자 그룹, 남자 그룹으로 나누었다면 나는 조금 더 창의력을 발휘해서 매주 흥미로운 테마를 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봄 하면 떠오르는 노래, 밴드 사운드가 돋보이는 노래, 인트로만 들어도 아는 노래, 에너지를 주는 노래 등 테마를 정해서 방송을 지금껏 이어오고 있다. 매주 다음에는 어떤 테마로 어떤 곡을 선곡할까 고민하는 일이 재미있다.
가끔은 '역시 DJ의 노화로 나도 더 이상 10대 후반, 20대 초반이 아니라서 너무 옛날 노래를 선곡하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좋아하는 아이돌 2-3세대 노래 위주로 선곡하게 된다. 하지만 최대한 케이팝 2세대부터 4세대까지 골고루 반영하려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에너지를 주는 노래' 시간에는 첫 곡부터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로 방송을 열였다. 그리고 소녀시대에 이어 2세대 카라, 2.5세대 인피니트, 비투비, 3세대 레드벨벳, 여자친구 그리고 최근 가장 핫한 4세대 투어스의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를 선곡했다.
아이돌 그룹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해외에서 국내보다 인지도가 낮은 아티스트의 노래도 소개하고 있다. '밴드 사운드가 돋보이는 노래' 시간에는 버즈, YB, 체리필터 노래를 선곡하며 영국 청취자들이 잘 모를 법한 노래를 소개했다는 뿌듯함을 느낀 다음에 아이유와 태연, 데이식스, 엔플라잉, (여자) 아이들 노래를 선곡했다. 선곡에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어 최신 유행곡이 아닌, 내 마음속의 인기 차트를 자유롭게 반영할 수 있어 감사하다.
라디오 출연은 '드라마 OST 발매', '단독 콘서트', '롤모델과 무대'와 함께 늘 나의 꿈 리스트에 있었다. 무엇보다 어떤 일이든 마음에 맞는 사람과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이보다 더 큰 복이 없다. 늘 미소로 맞이해 주시는 방송국 매니저님도 좋고 스튜디오에 들어가 마이크 앞에 앉으면 매번 설레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https://www.voicefmradio.co.uk/on-air/shows/the-k-pop-show/
영국에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라디오 방송 데뷔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