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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연 Apr 27. 2024

처음 그때처럼


가는 장소를 바꾸고, 만나는 사람을 바꾸고, 시간을 달리 써야 내가 바뀐다는 말이 있다. 한 달 반 동안 한국에서 휴가를 마치고 사우스햄튼에 오자, 많은 것이 달라졌다. 먼저 사람은 역시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단 걸 깨달았다. 한국에서 영국으로 오기 전, 영국 가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불편하고 싫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편한 것도, 조금 불편한 것도 사람은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한국에서 그렇게 맛있는 음식 먹고 휴가를 즐기다가 학교 가기 무척 싫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매일 같이 걷던 집에서 시내까지 거리, 같은 버스 정류장, 창 밖에 보이는 풍경이 새삼 새롭게 느껴졌다. 가장 신기했던 건 공기였다. 명확히 뭐라고 설명할 순 없지만 집, 버스, 연습실, 학교 복도 곳곳에서 '그래, 공기, 이 냄새였지'하며 반가웠다. 작년 9월 말, 영국에 처음 도착한 이후로 다시 느껴보는 생각과 감정이었다.


날씨 역시 10월과 매우 비슷해서 정말로 학교에 처음 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모든 감각을 통해 유학 생활이 다시 한번 새롭게 시작하였다. 또한 이제 학기가 한 달 밖에 남지 않았기에,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가는 하루하루가 소중해졌다. 물론 6월부터 졸업까지 얼마든지 연습실, 동아리 활동 및 수영장 등 이용을 위해 캠퍼스에 갈 테지만 방학 때 학교 가는 느낌은 다를 거다. 


익숙함에 속아 잃었던 소중함을 되찾았다. 1년 치 교통패스를 결제해 놨기에 버스 탈 때마다 돈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도, 하차 태그를 하지 않는 것도 새삼 편하게 느껴졌다. 기숙사에 도착하자 이게 얼마만이냐며 웃는 얼굴로 맞이해 준 시큐리티도, 오랜만이라며 한국 갔다 온 거냐며 물어보는 중국 식당 점원도, 단골 밀크티집 직원도 모두 너무나 반가웠다. 


이 모든 것이 몇 주면 금방 익숙해지고 싫은 것도, 짜증 나는 것도 많아질 거란 걸 안다. 처음 영국에 도착한 그때처럼 마냥 해맑고, 모든 것이 신나지는 않다. 그런데 감사함이 더해졌다. 버스 창 밖을 행복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나는, 익숙한 이 삶당연하지도 영원하지도 않음을 깨달은 내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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