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 이야기

심리학이 말하는 그리움의 힘, 노스탤지아

홍경화 지음 / The Tale Bridge

by 이가연
노스탤지아는 단지 그리움의 감정이 아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서사적으로 연결해 주는 심리적 가교이자 인생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드는 정서적 내비게이션이다.


p34 우리는 과거를 얼마나 자주 그리워해도 될까? 답은 간단하다. 그리워하고 싶은 만큼 그리워해도 된다.

- 이 책을 읽으면서 '영국에서 찍은 사진, 영상들을 불편해서 못 보는 현상'이 다시금 떠올랐다. 작년에 심각했다. SNS에서, 유학 다녀온 사람이 한 1년은 사진첩 못 봤다는 글을 보고 '와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며 얼마나 안도감을 느꼈었는지 모른다.


충분히 '그리움'이란 정서를 꺼렸을 수 있다. 지금도 아무리 의식 수준에서는 '내년에 또 갈 건데? 나는 앞으로도 계속 명절처럼 일 년에 한두 번씩 방문할 거야.'라고 하지만, 학생이었던 시절이 돌아오는 게 아니다. 지금은 영국 구직을 안 하기 때문에 괜찮지만, '중도 긴급 귀국했다는 자책과 후회'에 1년을 시달렸다. 그러니 괜히 '그리움'이라는 정서를 느끼면, 자책과 후회가 딸려올까 봐 거부감이 심했던 모양이다.


p30 우리가 그리워하는 과거의 장면들 속에는 대체로 내가 사랑한 사람들이 함께 있다. (중략) 노스탤지아는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사회적 유대감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 예를 들어, 졸업식 사진도 되게 불편해졌다. 그날 친구가 없었으면 절대로 행복한 졸업식을 보낼 수 없었다. 그러나 친구와 최근에 분노로 끝을 맺었기 때문에, '그 친구 덕분에 정말 행복했던 날들이 많았어.'라고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불편하다.


p72 현재 파트너가 있는 200명의 실험 참가자 중 60프로 이상의 참가자가 우리만의 노래가 있다고 보고했다. 특히나, 이런 우리만의 노래를 가지고 있는 참가자들은 결혼을 했다고 보고했다. 즉, 많은 연인들이 실제로 자신들만의 노래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결혼한 커플일수록 이러한 노래를 공유하는 경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 그 200명의 실험 참가자 중에 싱어송라이터는 없죠?


p89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과거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힘든 현재를 견디기 위해 과거의 따뜻함을 빌려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연구에서도 '현재가 불행할수록 과거를 더 많이 회상한다'는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밝혀진 바가 없다.

- 이 책이 작년에 나왔으면 좋았으련. 작년에 자책을 상당히 했다. 현재를 똑바로 못 사니까 자꾸 과거에 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빠는 늘 나는 한순간도 못 산 적이 없다고 말해줬다. 늘 잘 살았다.


p91 라일리의 마음속 감정 캐릭터 중 '기쁨이(Joy)'는 슬픔을 억누르고 행복만을 유지하려 하지만 그 결과는 실패였다. 라일리를 진정으로 구한 것은 슬픔과 기쁨이 공존했던 과거의 추억이었다.

- 거의 모든 순간에 슬픔과 기쁨이 다 공존했다. 예전에 딱 이 '인사이드 아웃'에서 영감을 받아, 좋았던 기억이라 생각했지만, 그 이면을 분석한 글을 썼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브런치 글도 곧 천 개다..


p132 일반적으로 우리는 과거의 연애를 떠올리는 것이 지금의 연애에 만족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심리학 연구는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보여준다. 과거의 연애를 회상하는 것이 현재 연인과의 관계 만족도를 높이고 그 관계를 더욱 애틋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 내 가치관에선, 과거 사람 얘기는 꼭 해야 한다. 그 얘기를 못한다는 건, 내 기준에서는 그냥 깊이 없는 데이트 메이트 관계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전 애인의 결혼식장을 가든, 전 애인 부모님의 장례식장을 가든, 상관이 없다. 만일 전 애인 문제로 속이 썩는데 나에게 말을 안 한다면,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걸까.' 싶어서 뭐든 다 말할 수 있는 부모 같은 존재가 되도록 노력할 거다. 과거의 연애가 종종 생각나는 건 너무 자연스럽다. 나도 종종 '내가 왜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었을까' 싶다. 그럼 내가 어떻게 사람 보는 눈을 키워왔는지 얘기 나눌 수 있겠다.


p169 따라서 해외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보고 단지 적응에 실패한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리움은 새로운 세계에 정착하려는 인간적인 노력의 표현이며 노스탤지아는 낯선 삶에 다리를 놓는 심리적 연결 고리다.

- 한국에서 영국을 그리워한 작년의 나는, 적응에 실패한 사람이 아니었다. 작년 9월에는 12월 졸업식 때문에 영국 가는 비행기를 끊어놓고는 계속 기다렸다. 그뿐인가. 올해 1월에도 5월에 가는 비행기 끊어놓고 계속 기다렸다. 올해 9월 되어서야, '나 이제 그닥 안 가도 될 거 같은데, 이미 끊어놨으니까...' 하면서 갔다. 그 과정에서 진심으로 '자책'이 너무 많이 끼어들었다. 그것도 다 한국에 다시 적응하려는 인간적인 노력이었다.


작년부터 사우스햄튼을 제2의 고향이라 부른다. 아무도 비웃은 적 없는데, '명예 영국인이다. 영국인의 피가 흐른다'라고 장난 삼아 말할 때마다, 내 무의식은 나를 비웃고 괴롭히고 있던 거 아닐까.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마음껏 그리워만 할 수 있어도 참 마음이 편안해질 거 같다.


p93 실제로 날씨는 노스탤지아에 큰 영향을 준다. 비의 나라인 영국의 사우샘프턴 대학에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며 천둥이 치는 날에 사람들은 그리움을 더 강하게 느낀다고 한다. 날씨가 궂은수록 우리는 과거의 따뜻한 순간에 마음을 더 쉽게 기댄다.

- 가끔 책 읽다가 소튼 나오면 반갑다. 내가 유명한 대학 다닌 게 맞구나 싶다. 저런 연구 실적이 좋으니 세계 대학 순위에 있겠지.




나는 런던에 신나서 1박 2일로 뮤직 엑스포 갔던 게 그립다. 한국엔 이런 거 없다고 막 오빠에게 자랑했던 게 그립다.

= 이거부터 생각난 이유. 돈만 여유 있으면 내년 2월에 또 거기 가고 싶은데 억눌렀을 것이다. 그래. 이런 식으로 알아가면 된다.


나는 드넓은 들판에서 망아지, 당나귀들 구경하던 게 그립다.

= 한국에 없어서 그렇다. 잠깐, 진짜 없나. 강원도 쪽 가면 있지 않나. 들판은 없어도 산은 있을텐데.


나는 사방에 사람들이 영어로 말하고, 외국인들로 가득하던 게 그립다.

나는 졸업식 장면을 생각하면 되게 그립다.

나는 학교 다니던 게 그립다. 학교 다시 다니고 싶다.

나는 어느 상점에 들어가도 사람들이 눈 마주치면서 웃고 친절하던 게 그립다.


나는 그리움이란 정서를 느끼면 또 당장 영국 가는 비행기 끊을까 봐 무섭다. 이제 안 그럴 걸 알아도, 그 충동에 1년을 시달려서 무서운 게 당연하다. 나는 아직 충동을 느끼지 않는 내 모습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는 거 자체가, 그리움은 현재를 잘 못 살고 있어서 드는 게 아니란 걸 증명한다. 그 어느 때보다 요즘 행복하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그리워하는 기억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다. 그 기억 속에 있는 자랑스러운 나, 용감했던 나, 사랑받았던 내가 지금의 나를 다정하게 안으면 다시 한번 말해주자. 너는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잘 살아갈 거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여자가 사랑한 여자들 : 전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