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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사랑

상처 재정의

by 이가연

성인 이후로 각종 온라인을 통해 사람을 알게 되어 만나고 다녔지만, 90% 이상 여자였다. 그러다 보니 신천지며 다단계며 많이 만났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올초까지, 새로운 남자를 만나려 했다. 소개팅뿐만 아니라, 올초엔 재능 교환도 찾아 헤맸다. 작편곡자는 남자가 대부분이다. 원래라면 여자만 찾았을 텐데, 그렇게 따지다간 아무도 없기도 하고 그냥 만났다. 심지어 한 명은 걔랑 똑같은 고향 출신이라, 더 경계가 느슨했던 것 같다.

다 한 번의 만남이었기에, 이름도 얼굴도 전혀 기억하지 못해도, 상처가 남아버렸다. 보통은 한 번 만난 사람으로부터 상처가 남지 않는다. 한 번 만나고 잘 안 풀리는 게 너무 당연하고 익숙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시기에 만났던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는, 강하게 자리 잡았다. '그동안 여자였는데, 남자여서 그런가. 대체 왜지.' 싶어서 생각해 봤다.

악의가 있는 상처였다. 나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순도 100% 공격이었다. 하늘이 그걸 알려주고 싶었던 거 같다.

걔로부터 받은 상처 얘기를 올해 여름까지 했다. 그런데 그건 상처가 아니었다. 본인이 날 왜 손절하는지 50분 동안 설명하던 것은, 지구 끝까지 날 배려한 것이었다. 진짜 싫었으면 문자로 욕만 했어도 됐다.

하늘은 진짜 나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여주며, 같은 과거의 사건도 다시 쓰게 했다. 진짜 상처가 뭔지 이미 알게 된 터라, 최면 치료를 받고 더 제대로 알게 되었다.

상처받은 사건에도 의미 부여를 해야 내가 정신줄 놓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건지, 아니면 이게 내 강점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다. 어떤 사건도 그냥 가벼이 넘기지 않고, '이게 다 뜻이 있다'라고 받아들이는 건 결국 좋은 거 같다. 상처는 재정의되었고, 사랑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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