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DHD와 나

ADHD, 사랑, 그리고 인류애

by 이가연

'ADHD 장점 = 내 장점'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나도 안다. 나는 ADHD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오빠도 종종 나는 ADHD가 아니었어도 그랬을 거라고, 그냥 나 자신이 그런 거라고 했다.

사람들에게 안부 인사를 전하는 것이 과연 충동성만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다. 충분히 대인기피증이 생겨서 사람을 아예 안 만나도 되는 판국에, 어떻게든 방법을 찾는다. 강연, 원데이 클래스. 비교적 평균 연령층이 높은 모임과 같이 찾아냈다. 내가 겪은 수백 명의 데이터에 의하면, 나는 진작에 히키코모리가 됐어도 이해가 된다. 한 번 만나고 매우 믿었는데 배신당했다고 느낀 경험이 얼마나 되나. 비 ADHD인도 기분 나쁘고 힘들 일을 나는 100배 강하게 느끼는데, 그런 경험 자체도 지난 9년 동안 수백 명이다. 간이고 혼이고 다 빼줬는데 팽당한 게 솔직히 올해부터 바운더리를 세웠지, 영국 가기 직전까지도 늘 일상이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그럴 수 없다. 지금 두 가지가 떠오른다. 하나는 딱 작년 이맘때, 영국 졸업식 날이었다. 나에게 '수도권에서 대학 다닌 20대 부산 여자' 억양이 어떤지 데이터를 남겨준 애다. 작년 졸업식 날에 내가 먼저 졸업 축하한다고 연락했다. 그전까지 연락을 안 했든, 그 후로도 안 하든, 난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작년 5월인가 6월 무렵 겪은 분노 비상 상황을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바로 약 먹어도 너무 힘들었다. 물론 그건 내가 이걸 어떻게든 막지 않으면 누구 귀에 다 들어간다는 걸 알아서 되었다만. (약은 이미 사건이 발생하고 내 마음을 좀 진정시킬 뿐이지, 사건이 아예 안 일어나게 막지 못한다. 이미 다 불 탄 뒤다. 그거 하나만 해도 걔에 대한 마음이 이미 아주 걷잡을 수 없이 망했었다. 약 먹었다고 되는 부분, 의지로 되는 부분 아니다.) 그런 분노 참는 걸 겪고 내가 먼저 연락할 수 있는 건 처음 봤다. 그건 분노를 안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결과적으론 누구에게 고마울 일이다. 정말 딱 축하 인사만 서로 건네었는데 잘했다.

두 번째는 방금이다. 전부터 좀 고민했었는데, 손절한 영국인 친구에게 크리스마스 인사를 메일로 보냈다. 첫 번째 경우랑 마찬가지로 간단한 답신이 올 거라 예상한다.

둘 다 ADHD 장점이 아니라 내가 가진 능력이다. 둘 다 전혀 충동적이지 않고 생각을 거쳤다. 나는 한때라도 소중했던 사람과 그렇게 끝내기는 못 하겠다. 그래서 내가 가진 ADHD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겨낼 힘이 있다고 믿는다. 분명 ADHD가 가진 충동성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두 번째 경우는 나도 영국인 친구에게 상처를 줬다.

하지만 내 강점이 자기 표현력만 있는 게 아니다. 거듭 브런치에 글을 쓰며 느꼈지만,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능력도 강점이다. 이건 한 사람 한정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약자와 소수자 권리가 지켜지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내 일도 아닌데 매우 화가 나고, 그렇게 꾸준히 봉사 활동을 찾아다니며 한다.

타로 라이브 방송 중 '트윈 플레임 관계가 궁극적으로 인류애를 향한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애초에 내가 인류애가 있기 때문에 발생한 그동안의 갈등과 마음고생이다. 세상 사람들이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라서. 미친 듯이 가벼운 세상에 나와 같은 극소수만 마음이 진지하고 무겁단 걸 올해를 통해 깨달았다. 그리고 딱 나 같은 사람하고만 대화할 것을 다짐했다.

1월에 ADHD 진단을 받고, 책과 자료들에 나와 있는 강점과 약점을 통해 나에 대해 훨씬 파악할 수 있었다. 이제는 그 단계를 넘어서, 나 개인이 가진 강점을 본다. ADHD가 창의적이고, 도전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건 맞는데,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ADHD인들이 자살을 하고, 평균 수명이 훨씬 짧나. 그걸 어떻게 쓸지 선택하고 개발시켜 온 건 오로지 나의 힘이다. 나는 그걸 음악으로, 글로, 타로로, 사람과 깊이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힘으로 쓰며 살아내 왔다.

이제 그 모든 기반은 사랑임을 깨달았다. 결국 사람이다. 사람을 위해 음악을 하고, 글을 쓰고, 타로를 본다. 나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내가 너무 좋다. 그리고 이걸 깨달을 수 있게 만든 사람에겐 참 고맙다. 능력을 모든 방면에서 극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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