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이 사랑

나는 왜, 너를

by 이가연

어떻게든 분노 상황을 안 만들고싶기 때문에, 내가 어떤 경우에 그러는지 많이 분석해뒀다. 아무리 잘 맞는 사람이라해도, 모든 지뢰를 다 피해갈 순 없지 않겠는가. "다른 얘기하자"하고 말해야 한다. 지뢰를 다 밟고 다닐 거 같은 사람은 그래서 한 번 만나고 마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아니 그래도 좀 더 만나보지 왜 사람을 한 번 보고 그러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기엔 너무 많은 데이터가 쌓여서 더 이상 사람들에게 분노하고 살고싶지 않다. 그런 내 모습이 너무 싫다. 분노해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은 것도 맞지만, 그럼으로 인해 자기 혐오가 쌓이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나는 남들이 1로 느끼는 걸 100으로 느끼는 뇌를 가지고 있어."라는 말을 달고 살아야 할 거 같다. 아니면 미안하다는 말을 과할 정도로 (내가 미안할 정도로) 많이 하는 영국인 친구나, 애초에 미안한 짓을 하지 않는 오빠만 친구할 수 있는 거 같다.


그런데 그 둘 다 아닌 놈이 있었으니...


문득 얼마나 지난 1년 7개월 동안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됐으면 전생 체험까지 했을까 싶다. '전생의 인연 때문에 그런가'라는 생각이 드는 걸 넘어서, 진짜 확인해봐야겠다고 행동으로 옮긴 게 아닌가. 그랬는데도 아직 안 풀려서, 당시 상황을 최면으로 돌아가보겠다고까지 한다. (상당히 비싸다...)


하루종일 좋다고 짝사랑하던 남자도, 거절이나 거부 당한 느낌을 받으면 너무 열 받고 내 기억 속에서 빠르게 지워버렸다. 내가 아무리 미친듯이 좋아했어도, 상대방의 말과 태도에 의하여, 순식간에 돌변하던 나다. 얼마나 빨리 정이 떨어지면 지난 십 년간 남자를 두 달 이상 좋아해본 적이 없겠는가. 짝사랑도 연애도 번 돌아서면 상대가 바로 싫어졌다. (진짜 감정이 아니라 ADHD식 충동 감정이었다고 표현하곤 한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그렇게 조언하고 챙겨주게 냅두지 않는다. 누가 나에게 조언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틈도 안 준다. 그런데 틈을 넘어서 나를 그냥 컨트롤 하도록 넘겨줬었다. '진짜 한국인 마인드네' 싶었던 말들 생각나는 것도 있다. 한국인에 진절머리 나서 영국 간 건데, 진작 내가 싫어했을 요소 많았다.


예를 들어, 사람이 좀 꾸미고 잘 차려입고 다녀야 사람들이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는 말에, 지금 누가 그런 말하면 '뭔 개소리야'까진 아니더라도 "내가 그런 개떡 같은 사람들을 왜 만나" 정도는 받아칠 것이다. 옷, 화장, 외적인 신경, 이건 내 지뢰 버튼 중 하나인데, 왜 '뭔 개소리야'라는 생각조차도 안 들었는가. 짝사랑하는 사람이건 부모건 교수건 신부님이건 지위 불문 욱하는 내가. 욱했으면 아무에게도 못 참는다. 생각도 안 들어야 가능하다.


그렇게 가치관 다른 사람 말을 가만히 듣고 맞춰주려고 한 적이 처음이다. 맞춰주려고 일부러 노력한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그러고 있었다. 다시는 불가능하다. 남의 말을 안 듣는 게 아니라, 못 듣는, 알러지 반응에 가까운데, ADHD를 이겼던 사람이라는 게시글은 그래서 나왔었다.


한편, 너무 안 받아치고 다 받으려고 했던 거엔 내가 지금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가 미화된 뭔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사람이 너무 고집이 세고 남의 말을 수용할 틈도 안주면 내가 받아치지 못하지 않나. 예를 들어, 얼마 전 엄마랑 쇼핑했을 때는 엄마가 이거 좀 입어보라해도 "싫어" 하면 넘어간다. 왜냐하면 엄마는 내 마음에 드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근데 걔는 내가 거부할 수가 없었다. (이 와중에 떠오른 거부할 수 없는 너의 마력은 루시퍼. 지금까지로 봐서는 악마다.)


오빠 왈, 나를 컨트롤할 수 있는 남자가 몇이나 되겠냐며 걔가 유일하게 나를 컨트롤하고 캄다운시켰다고 했다.


무슨 이유에서건, 지난 1년 동안 겪은 정신병의 원인 90%다. 10%가 한국에서 겪은 반복된 실패다. 눈 뜬 모든 시간 생각하고 있으니, 잠깐씩 봉사 가서 해방되는 시간만이 일주일 중 오아시스 같다. 1년 365일 매 초가 생고문이다. 생각을 끊을 수만 있다면 뭐든 할 거 같다. 일이든 사람이든 '과몰입' 상태에 빠져야 된다며, 죽을 힘을 다해봤다.


브런치와 유튜브로 숨 쉴 구멍이 없었더라면, 진작 다른 방법을 이용해서 컨택해서 기어이 욕을 듣곤 생고문을 끝냈을까. 그 길로 안 빠졌던 게 과연 결과적으로 좋은 건가. 어떻게 해서든 한 번 더 욕을 먹었어야 했나.


평생 안 나타날 거 같은 사람, 평생 안 그럴 거 같은 나의 행동, 평생 못 느낄 거 같은 감정에 죽을 지경인 거 잘 알겠다. 그런데 그건 내 사정이고, 상대에게도 내가 평생 안 나타날 사람이어야하는 거 아닌가. 그럼 나는 뭘 가지고 있나. 마음을 다 바치는 앨범 낸 거? 70편의 공개 고백? 극과 극으로 나뉠 걸 알고 있다. 이렇게 된 이상 상대가 느낄 감정에 무덤덤은 없다.


미안하거나, 아니면 왜 저러나 소름 끼치게 싫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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