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극히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담았습니다 ***
사실 나는 '한국인은 죽어도 나를 못 이해한다'라는 생각이 상당히 뿌리 깊게 박혀있다. 오빠나 제이드 같은 사람들을 더 만나봤어야 하는데, 이들은 외국인이다. 오빠도 30년 가까이 영국에서 살았으면 사고방식이 그냥 영국인이다. 그럼에도 항상 희망은 가진다. 오빠가 본인이 화가 날 정도로 내가 너무 그런 사람들만 만나왔다라고 말해주기도 하니, '아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이 그런 거고, 앞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하는 생각이 어느 정도 남아있다.
그런데, 내가 아는 한, '그런 사람들만 자꾸 생각하면, 그런 사람들만 끌어당긴다.' 그게 우주의 원리다. 내가 원하는, 나와 맞는 사람들을 계속 생각하고 머릿속으로 그려야 된다. 거듭 생각이 부정적으로 빠지는 걸 막기 어렵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이란 이런 것이다.
현재 나는 우울증 수치가 1에서 10까지 중에 7 정도다. 내가 겪은 10은 약물 자해 및 병원 입원이다. 그리고 이젠 안다. 이것은 결코 우울증만의 문제가 아니라, ADHD와 우울증이 만났을 때 벌어지는 일이다. 이게 더 위험하다. 왜냐하면 ADHD는 행동력을 만들어낸다. 정말 위험한 발언이지만, 그냥 우울증만 있는 경우보다, ADHD가 같이 있으면, 욱해서 차도로 뛰어들고, 욱해서 자해하고, 욱해서 죽을 확률이 확 올라간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누구도 그걸 원하지 않을 것이며, 돕고 싶어 할 것이다.
나도 우울한 얘기하기 싫어한다. 나는 내내 '우울해. 힘들어. 아파.'라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건 어떻게 보면 ADHD가 같이 있는 경우의 장점이다. 우울증만 있는 경우엔 우울감만 계속 토로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대화 주제가 계속 왔다 갔다 한다. 그러니 상대방이 '우울한 사람 옆에 있어서 나도 우울해지겠네'라고 느끼지 않게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사람이 힘들어 보이면, 그 힘든 얘기를 계속하라고 하고 들어주고 싶어 한다. 그러면 본인도 지칠 수 있고, 내가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전문가도 아닌데, 둘이서 땅굴 파고 있는 건 나는 별로다. 그런 건 전문가와 할 일이지, 친구, 애인, 가족이 깊이 있게 파고들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저 사람이 힘들어 보이니까 내가 들어줘야지.'라는 마인드를 가지지 않아도 된다. 난 차라리 상대방이, 본인은 오늘 이런 게 어려웠고 이런 게 좋았고 주저리주저리 자기 얘기를 해주길 바란다. 그러면 나는 '내 문제에서 벗어나서 상대방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게 도움이 된다.
할 말이 딱히 없다면, 내 관심사를 주제로 던져주는 것도 좋다. 예를 들어서, '요즘 진짜 너무 이상하고 너무 힘들다. 이러다 내가 진짜 죽으면 어떡하나.'라는 말을 할지언정, 그 정도로 말할 친한 사이라면 분명 근래 관심사를 던져놓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갑자기 그냥 '버스킹 대회 무대 설 거 생각하면 좋지 않아?'라고 하면 내 주의 집중이 '버스킹 대회'에 확 꽂힌다. ADHD는 대화 주제가 어차피 숨 쉬듯 바뀌기 때문에, '갑자기 이런 말 해도 되나'하지 않아도 된다.
'밥은 먹었는지' 물어보는 것도 좋다. 여담으로 방금 감자튀김과 치즈버거를 시켜 먹었다. 이건 영국을 생각나게 하는 소울 푸드다. 원래 한국에서 감자튀김과 버거 같은 건, 정말 일 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한 음식이었다. 그런데 영국 가니 식당만 가면 감자튀김이 나왔다. 그러다 보니, 이 평범하디 평범한 음식들이 나에게 그냥 '영국'이 되어버렸다. 내가 '감자튀김 먹고 싶다'라고 말하는 건 사실상, '영국 가서 친구 보고 싶다'와 같다.
보라, 갑자기 감자튀김 이야기를 하더니, 기분이 살짝 좋아졌다. 영국이 나에게 참 치트키다. 사람마다 그런 치트키가 하나씩 존재하지 않을까.
심각하게 '저 사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거보다, 차라리 웃긴 릴스, 쇼츠 영상을 마구 공유해 주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것도 같다.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그렇다.
할 수 있다면 그냥 그 사람을 만나는 게 가장 좋다. 지금의 나도, 누군가가 나오라고 하면 나갈 수 있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한국에 성인으로 살면서, 누군가가 먼저 나에게 만나자고 하는 걸 느낀 기억이 없다. 누가 먼저 만나자고 해서 약속이 잡히는 게, 도저히 상상도 안 되는 일이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지난 10년간 항상 먼저 인간관계를 주도하고, 나만 노력하고, 상처받아서 폭발하거나 삭제하는 것 때문에 그것만 생각하면 죽고 싶을 지경이다. 올해부터는 제발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그만 노력하고 영국에 있는 친구 두 명만 생각했어야 한다. 상처받아서 내가 먼저 연락 안 하고 삭제하니, 절대 연락이 안 오는 사람들을 올해에도 그렇게 만들면 안 됐다. '와 이 사람들 내가 연락하는 거 싫었는데, 간신히 받아줬던 거 내가 또~~~~ 눈치 못 챈 거야?'싶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괴롭다. (나가서 사람 좀 만나라 한다거나, 사람 관련된 훈수를 둔다고 생각만해도 너무 큰 발작 버튼이라 이토록 강조하나보다.)
그러니 지금 당장이라도 친구가 한국에 와서 만날 수만 있어도 나는 우울증이 1-2로 내려갈 거 같다. (비싸도 영국 비행기를 7월에 잡았어야 했나.)
정신 건강 상태가 안 좋을 때에는, 시야가 상당히 좁아져있다. 얼마 전 강연에서도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들었다. 첫째가 '아무도 진심으로 나를 위한다는 생각이 안 들어서'인데, 감사하게도 이건 걱정 없다. 둘째가 '세상에 짐만 된다는 생각'인데, 자신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누군가에겐 힘이 된다는 생각이 안 들기 때문이다.
만일 상대방이 정말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거 같다면, 그 사람이 죽었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울 거 같은지 얘기해 주는 것도 좋을 거 같다. 내가 그런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너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잘하고 있는 거라고. 내가 절대 자살을 생각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음악이고 커리어고 영국이고 전혀 그 '죽지 않아야 하는 이유'에 생각도 안 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경우다. 제일 좋은 방법은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이렇게 글을 적나라하게 남길 수 있는 이유는, 어차피 이 글을 나의 친한 친구, 가족, 미래의 애인 등이 본다고 해도, 정녕 내 사람이라면 나를 '우울증에 ADHD가 있는 안쓰러운 사람'이 아니라, '그런 어려움에도 초인적인 힘으로 극복해낸 사람'으로 볼 것을 알기 때문이다. 친밀한 관계에서 기본적으로 '상대에 대한 존경심'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관계가 유지된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방들이 봤을 때 나는 이 점이었으면 좋겠다.
유명하지도 않고 그걸로 돈벌이가 되지도 않는데도 거의 10년째 노래하고 음악하는 모습이 멋있어서가 아니라, 반평생 정신 건강의 어려움을 달고 살았는데도 계속 살아있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멋있어해줬으면 좋겠다. '너가 살아있는 게 기적이다.'라는 말을 제일 듣고 싶어하는 거 같다.
음악, 외국어, 글쓰기와 같은 외적인 능력으로 대단하게 봐주는 건, 이제 그닥 와닿지도 않는다. 그건 나를 처음 본 사람들도 할 수 있는 말이다. '내가 ADHD라는 걸 27살에 알았는데도 지금껏 이렇게 싸워오며 살아온 것'이 내 무기가 되고 싶다.
지금 마음으로선, 음악보다 그걸로 사람들에게 더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