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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사랑

꿈에서 깨어나

by 이가연

짝사랑은 정보의 부족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원하는 사람은 내가 겪었던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이 아니라, 나에 대한 정보를 얻고 바뀐 사람이다. 한마디로 엄마처럼, ADHD에 대해서 공부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서 대화가 되길 바라는 거다. 그런데 줄곧 외쳐왔다. 제이드나 오빠처럼, 브런치 글과 나의 설명이 없더라도 '너는 지극히 정상이야. 너는 훌륭해.'했던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애초에 상처를 안 준다.


가족은 상처를 많이 받은 만큼, 태어났을 때부터 나에게 들인 노력과 돈이 얼마인가. 우리 집이 나에게 사랑을 표현한 대표적인 방식은 돈과 환경이었다. (물론 나의 사랑의 언어는 다르다. 나는 선물은 중요도 0점이고, 스킨십과 함께하는 시간이 중요한데 가족은 그걸 모른다.) 걔가 준 상처는 가족과 같다. 그럼 관계가 생길 수 있는 것도, 가족이 준 만큼의 사랑을 받아야 되는 거 아닌가.


왜 기다리는가. 혹시 이거 원가족으로 받은 상처를 얘에게서 치유받을 수 있을 거란 착각을 하는 건 아닐까. 왜냐하면 부모는 말기 암 진단을 받지 않는 이상, 절대 나에게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얘는 막 가능해보이는가. 내가 살면서 가장 큰 애증을 느끼는 대상이 딱 두 사람 있는데 그게 나의 부와 얘다. 그리고 생각할수록 둘이 똑같다. 진짜 이거 너무 구리지 않나. 막 얘랑 결혼하면 원가족의 상처까지 다 해결될 거 같나.


이게 나와 상대를 위해 하늘이 원하는 일일 수도 있다. 나는 그런 내 모습을 너무나 싫어하기 때문에, 원가족이 아닌 이상 절대로 몇 년에 걸친 분노를 키우고 싶지 않다.


예전에, 장학생 파티 갔을 때 내가 막 들뜨고 좋아하는 모습을 카톡으로 실시간으로 공유하니 왜 이렇게 날뛰냐며 핀잔 주고 뭐라해서 상처 받은 적 있다. 이거 하나만 봐도 ADHD 있는 그대로 전혀 존중하지도 않았다. 제이드나 오빠는 그런 내 모습을 좋아해준다. 오빠는 특히 ADHD의 그런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고 해준다. 그게 내가 원하는 '친구'다.


지난 1년 반 동안 나에게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음을 명확히 보여줬다. 내가 여전히 이러고 있다는 걸 알고 있거나, 모르고 있거나 둘 중 하나다. 모르고 있다면, 아무런 가망이 없다. 알고 있다면, 지금껏 아무 말도 없는 게 내가 원하는 사람인가. 작년 여름도, 이번 겨울도, 봄에도, 계속 위기가 몇 번 찾아오고 힘든 모습이 유튜브와 브런치에 보였는데도 남의 고통을 즐기는 사디스트도 아니고 뭔가.


알고 있다면, 그리고 마음이 없다면 선 넘은 글, 영상들이었고 진작 그만하라고 했어야 한다. 작년 여름에도, 가을에도, 이번 5월에도, 내가 기프티콘을 보내면 이런 거 보내지 말라고 한 번이라도 했어야 그게 내가 원하는 사람이다. 무응답만 아니면 되었다. 무응답은 전부,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만 생각하게 했다. 제발 욕 한 번만 먹기를 바랐다. 제발 내 환상이 깨지길 바랐다.


나에게 마음이 있어도, 나는 이렇게까지 지속적으로 고통을 키우게 만드는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고통을 즐기는 게 아니라, 상대도 지켜보면서 고통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로 회피를 하는 것이든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나처럼 자기 표현에 거침 없고 관계에 진심이고 진솔한 사람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관계가 생기려면 가족이 줄만한 사랑을 받아야 하는데, 그걸 계속 꿈꾸고 있기에는 의학적으로 '망상'에 들어갈까봐 못 하겠다. 내가 가진 ADHD와 우울증 증상으로도 벅차서, 망상까지 해결해야하고 싶지 않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원하지 않고 있다. 분명 이미 강한 분노가 뒷면에 존재할 것이다. 혹시 분노하는 내 모습을 너무 싫어해서 이토록 오랜 시간 사랑이라는 탈로 가려졌었나.


내가 원하는 건 상상 속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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