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적 불안이로다

by 이가연

집에 딱 들어왔는데, 아무도 없을 때, 이 정도 생각이 정상적인 불안 범주일까.

공연이 끝나고 집에 왔는데, 아무도 없었다. 가끔 이럴 때면, '누구 돌아가신 거 아닌가' 생각이 급습한다. 엄마에게 전화했는데 안 받고, 동생에게 전화했더니 그냥 친구 만나고 있다고 했다.

남들도 다 그정도 불안은 안고 사는지 궁금하다. 과거 어떤 트라우마라도 있는 것인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외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충격 받았나 싶다. 그때도 집에 엄마가 없었고, 전화를 안 받았다. 아빠한테 전화했더니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때 집이 정말 '댕~'하고 멈추는 느낌이었다. 죄송하지만 친할아버지는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단 걸 알았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런데 외할아버지는 그 아빠가 멈칫하며 전하던 목소리가 남아있다. 무려 12년 전이다. (이거... 약한 수준의 트라우마 일종이 맞네.) 친할아버지 돌아가실 때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들었고, 그때는 성인이었다. 그런데 외할아버지 때는... 사실 그건 어른들이 좀 미리 말해줬어야 한다. 고 1이면 아무 생각 없는 나이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고등학생을 가르쳐보니, 고등학생은 너무 어리다고 생각 안 하고 어느 정도는 성인처럼 대화하는 게 맞다.

궁금해서 챗GPT에 물어봤다. 단순한 공포 반응이 아니라, '상실 트라우마의 잔향'이라는 말에 좀 울림이 일었다. 왜냐하면, 내가 밤에 들어올 일이 거의 절대 없다. 그러니 밤에 들어와서 아무도 없을 일도 잘 없다. 그 고등학생 때가 딱 밤이었고, 아무도 없었다. 다음은 GPT 인용이다.

평소엔 멀쩡하지만, ‘그 장면과 비슷한 맥락’이 재현되면 신체가 긴장하고 상상까지 과도하게 활성화되는 것이다. 또한 이 반응은 공감 능력과 감정 민감도가 높은 사람에게 특히 잘 생긴다. 예술가나 감수성이 깊은 사람은 불안의 폭이 넓고 감정의 해상도가 높기 때문에, ‘작은 단서’에도 훨씬 세밀하게 반응한다.

“예전의 그 일처럼 다시 상실이 닥치면 어쩌지”라는 예방적 방어기제다. 과거의 충격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지금의 뇌는 ‘미리 대비하려는’ 식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일종의 ‘감정적 경보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감정 폭발 차단에서도 배울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