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수첩, 심장소리
임신 7주 차, '드디어 오늘은 산모수첩을 받을 수 있겠지?' 그놈의 산모수첩이 뭐라고 나는 산모수첩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산모수첩을 받아야 왠지 임산부로서의 정식인증을 받는 느낌이랄까.
검진일이 되고 병원에 방문했다. 일부러 기다리고 기다렸다가 남편과 함께 금요일 방문했다. 며칠 빨리 방문했다가 심장소리를 또 못 듣고 실망할 발걸음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초음파를 봤다. "쿠궁쿠궁 쿠궁쿠궁" 기차소리? 엔진소리? 비슷한 규칙적인 소리가 들렸다. 의사 선생님과 함께 보는 화면에서는 그래프에 일정한 파장이 찍혔다. 선생님은 심박수도 안정적이고 잘 뛴다고 하셨다.
158 bpm, 1.4cm. 내가 처음 마주한 다올이의 피지컬이었다. 검지손톱만 한 생명체가 내 뱃속에 자리 잡고 있음이 아직은 실감 나지 않았다.
주변에 임신한 친구들이 심장박동을 듣고 나면 드디어 아기가 있다는 게 실감 나면서 엄마로서 책임감이 느껴지고 박동소리에 눈물이 나고 감격해서 벅찬 마음이라고 하던데 난 또 딱히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내가 무정한 엄마이려나 싶었다. 그저 드디어 산모수첩을 받는구나! 하며 기뻤다.
진료가 끝나고 병원에서 드디어 산모수첩을 받았다. 내 이름이 적힌 산모수첩과 다올이 심박 그래프와 아기집이 찍힌 초음파 사진도 받았다. 산모수첩과 초음파사진을 나란히 두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당장이라도 인스타나 여기저기 친구들 단톡에 떠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초기엔 말하지 않는 게 좋다고 다들 그러길래 꾹 참았다. 남편과 공유하며 기념용으로 간직하자 얘기했다.
병원에서 받은 임신확인서를 가지고 구청으로 갔다. 임산부등록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젠 당당히 임산부전용 주차공간에 주차할 수 있으리. 버스나 지하철 임산부석에 눈치 보지 않고 앉을 수 있으리. 부푼 기대를 안고 구청으로 향했고, 구청에서는 임산부전용 배찌와 임산부주차카드, 임신축하선물을 받았다. 선물로 손싸개와 손수건, 엽산등을 받았다. 손싸개를 처음 마주한 나는 귀여워 미칠 지경의 작은 사이즈에 우리 다올이가 태어나면 저 안에 손이 들어간다는 거지? 하며 생각보다 더 작은 크기를 새삼 실감하며 신기해했다.
임신 8주 차, 임신사실을 알리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다. 도저히 참다못한 나는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낸 소위 절친이라 불리는 3명의 친구들이 있는 단톡에 아무 말 없이 초음파 사진을 보냈다. 그간의 남편과 나의 노고에 대한 고충을 주로 이 단톡에 투덜거렸기에 3명의 친구들은 마치 본인들의 일인 양 나를 대신하여 뛸 듯이 기뻐해주었다. 세 명이 돌아가며 전화를 걸어 축하한다고 진짜냐며 "이제 나 이모 되는 거야?"를 연신 외치며 정신을 쏙 빼놓았다. 한 친구는 예비 신랑 시댁이 아동교구를 한다며 아동용 교구를 잔뜩 보내주겠다며 설레발을 쳤다.
엄마에게 저녁을 먹자고 했다. 자연스럽게 엄마가 건네는 소주잔을 거절했다. 엄마가 놀라는 표정으로 임신했냐고 물었다. 그런 거 같다고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자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엄마가 그렇게 웃으시는 표정을 정말 오랜만에 봐서 낯설게 까지 느껴졌다. 낯간지럽고 어색하기 마저 한 순간이었다.
남편을 시켜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임신소식을 알렸더니 너무 축하한다고 하시며 저녁약속을 잡자고 하셨다. 며칠 뒤 저녁식사자리에서 축하말씀과 함께 축하금을 주셨다. 아들인지 딸인지 너무 궁금하시다며 태몽을 물어보셨다. 벚꽃꿈 얘기를 해드렸고 그럼 딸인 거 아니냐며 어머님은 더 좋아하셨다. 시댁은 딸이 귀한 집이었기에 많은 사랑받을 거라며 더없이 좋아하셨다.
양가에 알리기도 다했으니 이제 대대적인 공표를 할 차례였다. 개인 sns에 초음파 사진과 함께 우리에게 찾아와 줘서 고맙다며 다올이에게 짧은 편지를 남겼다. 100명이 넘는 지인들이 축하메시지를 보냈고 관종인 나는 관심을 받고 신나 있었다. 이 관심이 나에게 쏠리지 않고 다올이에게 향하는 거였지만 기뻤다. 부모가 되는 건 이런 걸까. 더 이상 나에게 집중되지 않는 시선이 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기에게 쏠리는 관심에 더 고맙고 감사했다. 이런게 부모의 마음인가 싶어 스스로를 대견해 했다.
벌써부터 주위에서 선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배냇저고리며 공갈젖꼭지며 아기침대까지 생각지도 못한 관심과 축하에 너무 감사했다. 아기용품들이 하나둘씩 들어오자 작은방 한편에 물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하나 둘 아기용품이 생길 때마다 이 물건들을 사용할 날을 기다리며 매일 설레는 나날들을 보냈다. 이제 드디어 나에게 아기가 왔다는 사실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